[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대(大)사이클 이론으로 본 '세계증시 폭풍전야설(說)'
세계 증시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국 증시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기와 증시가 ‘대(大)안정기’와 ‘대침체기’를 반복하면서 이제는 ‘대사이클 이론’이 정형화된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지난해 2월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취임한 뒤 세계 증시는 재차 대안정기에 접어들었고, 대사이클 이론의 효력은 갈수록 뚜렷해졌다. 2009년 2분기 이후 2년 이상 지속했던 ‘1차 대안정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올해 5월까지 시장에서 경제주체 사이에 위기의식이 급속히 사라졌다. ‘공포지수’가 ‘안전지수’라 불릴 정도였다.

이 때문에 ‘2차 대안정기’ 이후 ‘2차 대침체기’가 언제 올 것인지에 대한 경고가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돼 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옐런 의장 취임 이후 나타난 현상이 2008년 금융위기 직전을 연상케 한다”며 조만간 세계 증시에 대폭발이 올 것이라고 ‘폭풍 전야설’을 경고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로 시장이 크게 동요할 당시 전문가들은 세계 경기와 증시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은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토록 빠른 속도로 큰 폭의 침체를 겪을 것이라곤 예측하지 못했다. 같은 맥락에서 세계 경기와 증시가 빨리 회복할 것으로 본 사람도 많지 않았다.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대(大)사이클 이론으로 본 '세계증시 폭풍전야설(說)'
대안정기에서 대폭락기로 돌아설 때에는 ‘하이먼-민스키의 리스크 이론’이나 ‘조지 소로스의 자기암시가설’에서 지적한 것처럼 ‘순간 폭락(flash crash)’ 현상이 동반한다. 주가 등 가격변수가 어느 날 갑자기 대폭락기에 접어든다. 미국 증시에선 2010년 5월6일 장 마감 직전 불과 15분 만에 다우존스지수가 1000포인트 급락한 적이 있다.

중국 증시도 그렇다. 지난 6월5일 한국경제TV에서 ‘중국 증시가 순간 폭락할 수 있는 만큼 브라질 국채를 팔아 중국 증시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방송했다. 그 뒤 12일 상하이종합지수가 5166까지 오르다가 30% 이상 급락했다. 2차 대폭락기로 이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는 배경이다.

심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던 1차 대안정기와 달리 2차 대안정기가 찾아온 가장 큰 요인은 선진국 중앙은행의 ‘울트라 금융완화정책’이다. 돈이 너무 많이 풀렸다. 양적 완화(QE)로 상징되는 선진국의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은 이제 유럽중앙은행(ECB)에서 ‘마이너스 금리 예치제’까지 도입했을 정도다.

기초여건의 개선 없이 금융완화 정책만으로 위기극복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황에서 대침체기가 올지 여부는 ‘위기 후 과제’를 얼마나 잘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안정기 이후 ‘대침체기가 오느냐’는 이 과제에 대한 대응과 극복 정도에 따라 위기국면 지속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과거 위기국의 경험이었다.

위기 후 과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보면 두 가지다. 하나는 브라운식 방식(1930년대 루스벨트 방식과 동일)이다. 이는 비상사태에 준하는 위기극복 대책을 추진했던 선진국의 재정적자와 국가채무 문제로 이미 유럽 재정위기로 가시화됐다. 정도 차는 있지만 대부분 선진국과 일부 신흥국은 재정위기 우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 다른 하나는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기 충격이 덜했던 신흥국이 선진국의 위기극복 과정에서 유입됐던 과다 유동성에 따른 후유증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2013년 5월 말 벤 버냉키 당시 Fed 의장이 출구전략 추진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신흥국이 ‘긴축 발작(taper tantrum)’에 시달렸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위기 후 과제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경기회복과 위기극복을 지나치게 낙관해 금리 인상 등의 긴축기조로 성급하게 돌아서면 긴축 발작이 발생할 수 있다. 어렵게 돋은 ‘싹’이 다시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소위 ‘제2의 에클스 실수’다. 이 때문에 실물경기가 회복 국면에 깊숙이 진입한 뒤 출구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초여건이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 조기에 출구전략을 추진하면 세계 경기와 증시는 어느 순간에 ‘대침체기’를 맞는다. 특히 중국이 안전판 역할을 했던 1차 대침체기와 달리 이번에 증시 폭락을 계기로 세계 경제가 무너질 경우 2차 대침체기는 의외로 빨리 올 수 있다. 옐런 의장의 금리인상 연기 발언을 학수고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안정기와 대침체기가 반복되는 여건에서는 미국 금리인상 연기 발언만 나온다면 세계 증시는 의외로 빨리 회복할 수 있다. 투자자는 두 가능성에 동시에 대비해야 한다. ‘기본과 균형’이 최대 덕목인 때가 돌아왔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