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대교 지나는 군용 트럭 북한의 포격 도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진 가운데 완전무장한 육군 장병들이 23일 군용 트럭을 타고 경기 파주 통일대교를 지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통일대교 지나는 군용 트럭 북한의 포격 도발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진 가운데 완전무장한 육군 장병들이 23일 군용 트럭을 타고 경기 파주 통일대교를 지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남북은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23일 오후 3시30분에 남북 고위급 접촉을 재개했지만 밤새 진통을 겪었다. 우리 측은 남북 긴장관계를 불러온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과 서부전선 포격 도발에 대한 분명한 사과와 재발 방지 등을 요구했지만 북측은 대북 확성기 방송부터 먼저 중단하라면서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사과 먼저” vs “우리가 안 했다”

남북이 두 차례에 걸쳐 밤샘 대화를 벌이면서도 쉽게 접점을 찾지 못한 건 양측의 입장 차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북측은 긴장관계를 불러온 원인인 지뢰 및 포격 도발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북측은 이미 고위급 접촉 전부터 지뢰 도발 등에 대해 “남측이 조작한 것”이라고 발뺌해왔다. 북측은 그러면서 우리 군의 대북 심리전 확성기 방송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우리 측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사안으로 보고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정부는 장병 두 명에게 큰 부상을 입힌 지뢰 도발에 대해 북측의 분명한 사과가 선행돼야 대북 방송을 중단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뢰 도발에 대해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주체는 생략한 채 ‘군사분계선에서의 최근 상황’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으로 유감을 밝히는 형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은 1996년 잠수함 동해 침투사건, 2002년 제2 연평해전 등 자신의 도발 때 유감을 밝힌 적이 있지만 주체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우리가 북측의 요구대로 대북 방송을 중단하면 당장은 긴장 국면이 해소될 수 있지만 언제든지 비슷한 도발이 자행될 것이 분명하다”며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협상 원칙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날 2차 접촉에 나선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이런 원칙을 분명히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관계 전반 개선 방안 논의”

남북은 1, 2차 고위급 접촉에서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를 전반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러 방안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1차 고위급 접촉 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남북은 최근에 조성된 사태의 해결 방안과 앞으로의 남북관계 발전 방안에 대해 폭넓게 협의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연내에 남북 이산가족 명단 교환을 실현할 수 있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양측이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했다면 천안함 폭침사건에 따른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 문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까지도 함께 논의됐을 가능성이 있다. 북측은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등을 이산가족 상봉 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측이 대화 의제를 지뢰 도발 사태로 한정하지 않고, 전반적인 남북관계 개선방안까지 포함시킨 것은 고위급 접촉이라는 판을 깨지 않고 대화의 틀을 유지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낮춰 가자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뢰 도발에 대한 해법은 일단 미룬 채 양측이 추가 고위급 접촉 일정을 잡는 우회로를 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 이후 그동안 남북 간 응축된 갈등구조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폭발했다”며 “우리 정부가 원칙을 고수하면서 밀어붙이느냐, 아니면 타협을 통해 관계 복원을 시도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분석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