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정수기 업체 대표가 대당 1000만원에 달하는 운동기기를 무료로 빌려주겠다며 회원 1만여명을 모집하고서는 렌탈비를 내지 않아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등을 렌탈·판매하는 중견 가전업체인 ‘한일월드’ 이모 대표가 고객 200여명으로부터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고 24일 밝혔다.

고소장에 따르면 한일월드는 작년 5월부터 신상품 체험단 모집 명목으로 950만원 상당의 음파진동 운동기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홍보에 나섰다. 4년간 운동기를 렌트해 쓰면서 운동장면이 담긴 사진을 제공하거나 설문에 응하면 렌트비를 대납해줄 뿐만 아니라 4년 후에는 운동기 소유권도 넘기겠다는 조건이었다.

이를 위해 한일월드는 ‘금융리스 렌탈’이라는 생소한 방식을 제시했다. 월 19만8000원의 할부금을 회사 측이 현금으로 이벤트 참가자 통장에 입금하면 캐피털 업체가 이를 출금해가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한일월드가 지난달 돌연 고객들에게 주던 렌트비 지급을 중단하자 고객들은 수백만원에 달하는 렌트 비용 잔액을 모두 떠안게 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1만400여명이 참가해 전체 계약 금액은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반 고객뿐 아니라 회사의 말을 믿고 주변 친지까지 무료 체험 이벤트를 권유한 한일월드 직원들까지 피해를 봤다.

이 회사 직원이자 피해자이기도 한 A씨는 “월급은 이미 3개월 체납됐고 운동기 할부금은 지난달부터 들어오지 않았다”며 “이 회장은 20일 직원들에게 ‘렌탈 채권을 캐피털 회사에 1명당 682만원에 넘겼고 받은 돈은 회사 운영비용으로 모두 썼다’고 말하고는 잠적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해당 캐피털사는 한일월드가 고객에게 렌트비를 지원하는 사실을 숨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캐피털사 관계자는 “한일월드가 매출을 부풀리기 위해 캐피털사에 숨기고 렌트비를 고객들에게 지원한 것”이라며 “렌트비를 일시납하는 고객에겐 원금 일부를 감면해준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고객들은 ‘한일월드가 무료 사용을 약속했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고소장을 접수하고 일부 피해자를 조사하는 한편 이 회장에게 출석하라고 전화로 통보했지만 연락이 안 되고 있다”며 “출석에 응하지 않으면 체포영장을 받아 추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