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LG전자 '장인정신'도 좋지만…
“아이디어만 있는 제품은 안 만듭니다. 우리는 금성사(LG전자의 전신) 시절부터 기술력이 있는 제품만 만들어 왔습니다.”

지난 21일 경남 창원의 LG전자 창원공장에서 만난 한 경영진은 이렇게 말했다. LG전자 창원공장 세탁기 ‘트롬 트윈워시’ 생산라인을 보러온 취재진 30여명이 지켜보는 자리였다.

이 발언은 경쟁사인 삼성전자 세탁기 ‘액티브워시’와 비교해 달라는 취재진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액티브워시는 세탁기 위에 투명 빨래판을 장착해 본세탁 전에 손으로 애벌빨래를 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다. 난이도가 높은 기술력이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는 아이디어 제품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그는 “그 방식은 기술이 들어간 게 없다”며 “세탁기 위에 바케스(양동이) 올려놓는 정도는 우리도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거다”고 말했다. 경쟁사 제품을 깎아 내리는 것처럼 해석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LG전자 측은 뒤늦게 이 발언에 대해 “기술력을 강조하려는 취지였다”고 해명했다. ‘장인정신’을 강조하며 기술력에 신경쓴 점을 전달하려 했다는 얘기였다.

물론 경쟁사와 제품을 비교해서 자사 제품을 돋보이게 하려는 심정은 이해가 간다. 트롬 트윈워시의 빼어난 기술력도 인정한다. 하지만 특징이나 성능을 비교한 게 아니라 아이디어로 만든 제품 자체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은 귀에 거슬렸다. 최근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만 있어도 성공할 수 있다’며 아이디어 제안을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와도 많이 달랐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들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아온 것 중 하나가 아이디어에 대한 평가절하였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다 보니 혁신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러다가 최근 2~3년 새 아이디어 가치를 인정해주는 기업들이 하나둘 확산되는 추세다.

기술과 아이디어는 기존 제품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법이다. 방식이 다를 뿐 방향은 같다. 둘 중 어느 한쪽이 더 어렵다거나 중요하다고 쉽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기술을 존중하는 LG전자라지만, 아이디어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은 산업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