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의 화가’ 김종학 화백(78)은 1979년 전위적인 실험미술과 추상화가 판치던 서울 화단을 떠나 설악산으로 들어갔다. 그림이 더 이상 ‘이념의 노예’가 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외설악 입구 설악동에 작업실을 차리고 30여년간 화려한 원색의 그림을 쏟아냈다. 설악산의 다양한 이미지를 마음속에 담아뒀다가 작업실에서 하나하나 꺼내 마구 짜낸 물감으로 거칠게 찍어발라 산세를 시적으로 재구성했다.

현란한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한 이 그림 역시 색채의 향연장을 방불케 한다. 아침 햇살에 물든 산수유와 맨드라미, 진달래, 들국화, 나팔꽃 등이 활짝 웃고 있다. 꽃무더기 속에선 나비와 벌, 새들이 소곤소곤 대화를 즐긴다.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웅장한 기세는 설악산의 야생적인 힘을 더욱 가열차게 한다. 거친 붓놀림이 원초적인 듯하면서도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그림은 시공을 초월한 동화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