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남북 고위급 접촉이 타결에 이르는 과정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의 협상 태도다. 과거 북한은 협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중단을 선언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박 4일’, 43시간에 걸쳐 정회와 재개가 거듭되고 중간중간 협상 분위기가 거칠어지는 와중에도 ‘판’을 깨고 나가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 측의 원칙적 대응이 북한을 협상 테이블에 묶어 놓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리 측은 협상에서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와 서부전선 포격 도발에 대한 사과 없이는 요구사항을 들어줄 수 없다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했다. 도발 땐 단호한 대응을 하겠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국민 여론도 단호한 대응을 요구하는 쪽으로 모아졌다.

북한의 도발에 대해 진보 진영을 중심으로 양비론이 제기되면서 ‘남남 갈등’이 발생, 우리 측의 협상력을 떨어뜨리곤 했던 과거 사례와 달랐던 점이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25일 충남 천안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를 통해 “협상 과정에서 북측이 부당한 요구를 할 때마다 모든 국민이 북한의 도발에 분노하고 있으며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한·미 동맹은 강력한 연합 전력을 과시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협상이 길어지자 한·미 양국은 한때 미 공군의 전략 폭격기인 B-52의 한반도 배치를 검토했다. 더구나 이번 협상은 한·미 연합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기간(8월17~28일)에 진행됐다. 1년 중 한·미 연합 전력이 가장 잘 갖춰진 상황에서 북한은 추가 도발보다 대화를 통한 해결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항일전쟁 승전 기념 행사인 전승절(9월3일)을 앞둔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중국이 국가적 경축일을 앞두고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추가 도발을 위한 시간을 벌려는 의도로 북한이 무박 4일 대화에 임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동시에 대화에 나서 우리 측의 의중을 시험하는 ‘화전양면’ 전술을 이번에도 구사했다는 것이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황병서 북한 군 총정치국장이 대표로 나선 이번 접촉은 다른 회담과 달리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대리전 성격이 강해 양쪽 모두 회담장을 박차고 나가기엔 애초부터 부담이 컸다는 시각도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