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페그제(고정환율제)가 시험대에 올랐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이후 세계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하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트레이더와 투자자들이 홍콩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페그제를 폐기하는 쪽에 베팅을 늘리고 있다고 26일 보도했다. 다음달 홍콩이 페그제를 폐지할 경우 보호받을 수 있는 선물 옵션의 매매가가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홍콩은 1983년부터 미국 달러 대비 홍콩달러 환율의 변동폭을 고정하는 페그제를 시행하고 있다. 홍콩 중앙은행 격인 홍콩통화청은 홍콩달러의 환율 변동폭을 달러당 7.75~7.85홍콩달러로 제한하고 있다. 환율이 하한(홍콩달러 가치 상한)이나 상한을 넘으려고 하면 홍콩통화청이 시장에 개입해 환율을 방어한다.

지난 11일부터 사흘간 중국 정부가 위안화 가치를 5%가량 낮추는 평가절하를 단행하면서 홍콩달러 가치의 상승 압력이 커지고 있다. 투자자들이 위안화를 팔고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홍콩달러를 사들이고 있어서다.

사우디아라비아 중앙은행도 1986년 이후 자국통화 리얄의 달러 대비 변동폭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작년 하반기 이후 국제유가 급락 여파로 통화가치 하락 압력이 커지면서 환율방어 비용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중국 증시 불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등이 겹쳐 신흥국 통화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중앙아시아 최대 산유국 카자흐스탄은 지난 20일 페그제를 포기했다. 자국 통화인 텡게 가치의 하락 압력이 급격하게 커져 페그제 유지 부담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기준 환율과 변동 상·하한선을 제시하는 관리변동환율제를 채택한 베트남은 지난 12일 허용 가능한 환율 범위를 확대했다. 사실상 자국 통화인 동의 가치를 떨어뜨린 것이다. 동 가치를 지탱할 만큼 외환보유액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에 맞서 자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 페그제

peg system. 미국 달러화 등 기축통화에 대해 자국 통화의 교환 비율을 정한 고정환율제도를 말한다. 환율 변동에 대한 불확실성을 감소시켜 외국인 투자를 통한 자본거래를 활발하게 한다. 하지만 통화가치 하락 압력이 급격히 커질 땐 가치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서 자국통화를 사들여야 하기 때문에 페그제 유지 비용이 커진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