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마티 헤이모넨 핀란드 대사 "700년 식민지배 이겨낸 핀란드, 한국과 역사·문화 공통점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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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 헤이모넨 핀란드 대사
"학업평가 한국과 1·2위 겨루지만 성적 대신 적성 찾는 교육이 차이"
"학업평가 한국과 1·2위 겨루지만 성적 대신 적성 찾는 교육이 차이"
한국 속 핀란드
유년시절 라플란드에서 보내
관광객들 만나며 외교관 꿈꿔
핀란드의 자일리톨·사우나 등
어느새 한국에 문화로 뿌리내려
한국과 다른 핀란드
한국에서 좋은 학교가 ‘SKY’라면
핀란드선 집 가까워야 좋은 학교
핀란드인들 겨울 스포츠 큰 관심
평창올림픽 통해 양국 가까워지길
“휘바~ 휘바~.”
‘핀란드’ 하면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이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핀란드어로 ‘좋다’는 뜻의 이 단어는 2000년대 인기를 끌었던 자일리톨 껌 광고에 등장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핀란드어인 줄은 잘 몰라도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또 다른 단어가 있는데, 바로 ‘사우나’다. 뜨거운 돌에 물을 축여 증기를 내는 전통 방식의 사우나 문화는 핀란드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졌다. 바로 옆 건물에 핀란드식 ‘사우나’가 있고 핀란드풍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 경기 양주에 있는 ‘카페 휘바’에서 마티 헤이모넨 주한 핀란드 대사를 만났다.
날씨가 화창했다. 헤이모넨 대사는 인터뷰 전에 식당 주변을 한 바퀴 걷자고 했다. 카페 휘바는 3만3000㎡ 규모로 조성된 ‘헤세의 정원’이란 복합문화공간 안에 있다. 단체행사를 할 수 있는 장소와 레스토랑, 사우나, 산책로 등이 있다. 근처 텃밭엔 갓 캔 감자가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카페 휘바에서는 감자 외에 버섯, 허브 등을 직접 길러 요리 재료로 사용한다고 했다.
“핀란드에선 집 주변 숲에서 버섯 딸기 등 식재료를 얻곤 합니다. 이곳도 주메뉴는 이탈리안 퓨전 음식이지만 가까운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를 쓰는 점에선 핀란드 음식의 철학이 담겨 있는 셈이죠.”
단순하고 실용적인 게 핀란드 문화
헤이모넨 대사는 어릴 적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산타마을’ 소년이었다. 핀란드 남부 세이나요키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직장을 따라 ‘산타마을’로 유명한 북부 라플란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산타마을과 극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오로라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관광객들을 보며 저 사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곳은 어떤 곳일까 상상했어요. 자연스럽게 외국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교류를 증진하는 외교관을 꿈꾸게 됐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식탁에 놓였다. 먹물크림 리소토와 버섯 피자 등 이탈리아 음식이 주메뉴였지만 핀란드 가정식 감자 그라탱과 연어 샐러드 등 핀란드 음식도 몇 가지 눈에 띄었다. 핀란드에서 감자는 한국의 밥과 같다며 헤이모넨 대사가 감자 그라탱을 권했다. 크림소스와 함께 입에 넣으니 부드럽고 담백했다.
헤이모넨 대사는 “핀란드 요리의 특징은 재료에 다양한 맛을 가미하기보다 좋은 재료를 써서 본연의 맛을 살리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리법도 대개 굽고, 말리고, 소금을 뿌리는 세 가지로 단순하다고 했다. “완성된 요리를 보면 어떤 재료를 썼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게 핀란드 요리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헤이모넨 대사가 한국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삼겹살. 채소, 김치 등과 함께 먹으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헤이모넨 대사는 담백하고 실용적인 것은 핀란드 음식뿐 아니라 핀란드 디자인의 철학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쓸모가 있어야 아름다움도 가치 있고, 단순할수록 아름다움이 더해진다는 것. 대사는 손을 뻗어 식당 내부 곳곳에 장식돼 있는 핀란드 생활용품을 가리켰다. “저기 걸린 커튼은 핀란드의 대표 브랜드 마리메꼬 것입니다. 단순한 패턴이 브랜드의 상징이죠. 한국에서도 최근 북유럽 인테리어 소품이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헤이모넨 대사는 접시에 연어샐러드를 덜며 말을 이었다. “핀란드인과 한국인은 비슷한 면이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핀란드 사람을 설명하는 단어 중에 ‘시수(sisu)’라는 말이 있습니다. 은근하고 끈기 있는 정신이란 뜻입니다. 핀란드는 600년가량 스웨덴 식민지였고, 그 다음 100년은 러시아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독립 뒤 곧바로 좌우 내전이 벌어져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죠. 하지만 오랜 식민지 기간 동안에도 핀란드어를 지켜나갔고, 1960년대 이후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한국 역사와 닮은 점이 있지 않은가요? 그래서인지 직선적이고 담백한 한국인의 성향이 핀란드인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한국이 활용 못하는 자원은 여성”
파스타와 피자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헤이모넨 대사가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듯 질문을 하나 던졌다. “한국이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거의 활용하지 않은 자원은 무엇일까요.”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기자에게 그가 내놓은 대답은 “여성”이었다. 한국에선 많은 여성이 훌륭한 교육을 받지만 그들의 역량이 대부분 자녀를 기르는 데만 쓰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 25~54세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2.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6.2%)보다 훨씬 낮다. 반면 핀란드는 지난해 OECD가 여성의 사회진출 정도와 남녀 임금격차 등을 종합해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가장 양성이 평등한 국가 1위에 꼽혔다. 한국은 순위가 가장 낮았다. “핀란드는 유럽에서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여성에게 확대한 첫 번째 국가입니다. 양성평등 문화는 핀란드의 뿌리 깊은 유산인 셈이죠. 여성이 일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그만큼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제도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습니다.”
‘유리천장 지수’와 달리 교육수준을 평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선 핀란드와 한국이 매번 1·2위를 다툰다. 핀란드 교육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한국에선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가장 좋은 대학교라고 하지만 핀란드에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교를 가장 좋은 대학교라고 합니다.” 그는 핀란드 부모들은 어떤 학교인지보다 어떤 전공을 선택할 것이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적성을 찾아주는 교육이 핀란드 교육의 힘이라는 설명이었다.
“평창올림픽 계기로 양국 관계 진전됐으면”
후식으로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접시에 핀란드 국기가 앙증맞게 꽂힌 케이크 조각이 나왔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티라미수를 조금 잘라 입에 넣은 뒤 헤이모넨 대사에게 한국에 있는 동안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가 되물었다. “한국에서 핀란드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유럽에서도 북부에 있는 핀란드인 만큼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이런 표정을 읽었는지 그는 대답을 듣기 전에 말했다.
“서울에서 비행기 직항편을 타면 핀란드 수도 헬싱키까지 8~9시간 걸립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7~8시간 정도 걸리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와 큰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막연히 핀란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 가기 힘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마음의 거리가 멀어서 그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대사로 있는 동안 한국인들이 핀란드를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핀란드에서는 하계올림픽보다 동계올림픽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길가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즐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겨울 스포츠를 즐깁니다. 평창 올림픽을 핀란드인이 한국을 더 많이 방문하고, 한국인이 핀란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싶습니다. 올림픽 기간 평창 근처에서 핀란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핀란드 하우스’를 마련하는 방안을 협의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9월쯤 되면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기대해주세요.”
■ 헤이모넨 대사의 단골집 카페 휘바
‘미니 핀란드’에서 즐기는 감자요리…투명텐트로 만든 호텔도
헤세의 정원에는 카페 휘바말고도 한정식과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바베큐 시카’, 단체행사를 위한 공간 ‘셰프하우스’, 투명 텐트에서 글램핑(필요한 도구들이 모두 갖춰진 곳에서 안락하게 즐기는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버블호텔’, 핀란드식 사우나와 숙박 시설을 갖춘 ‘캐빈 푸우’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조원장 대표(57)는 25년간 핀란드산 천연 감미료와 자일리톨 성분을 한국에 수입하는 핀란드계 회사에서 일했다. 퇴직 후 부모가 1972년부터 가꿔 온 송추농원을 재정비해 헤세의 정원으로 재탄생시켰다.
카페 휘바의 주메뉴는 이탈리아 음식에 핀란드나 한국 식재료를 접목한 퓨전요리. 리코타치즈 가지구이 피자(2만3000원), 새우날치알 로제파스타와 호두브레드(1만9000원) 등이 있다. 핀란드식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핀란드 가정식 감자요리(1만6000원)나 핀란드풍 연어카나페(1만9000원)를 주문하면 된다. (031)877-5122
■ 마티 헤이모넨 대사
△1957년 핀란드 세이나요키 출생 △1986년 핀란드 외교부 담당관 △1994년 주(駐)스위스 핀란드 상임공관 참사관 △1999년 주(駐)독일 핀란드 대사관 공사참사관 △2001년 주(駐)일본 핀란드 대사관 공관차석, 공사참사관 △2004년 핀란드 외교부 수출진흥 및 국제화담당 △2008년 주(駐)상하이 핀란드 총영사 △2012년 주(駐)한국 핀란드 대사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유년시절 라플란드에서 보내
관광객들 만나며 외교관 꿈꿔
핀란드의 자일리톨·사우나 등
어느새 한국에 문화로 뿌리내려
한국과 다른 핀란드
한국에서 좋은 학교가 ‘SKY’라면
핀란드선 집 가까워야 좋은 학교
핀란드인들 겨울 스포츠 큰 관심
평창올림픽 통해 양국 가까워지길
“휘바~ 휘바~.”
‘핀란드’ 하면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이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까. 핀란드어로 ‘좋다’는 뜻의 이 단어는 2000년대 인기를 끌었던 자일리톨 껌 광고에 등장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핀란드어인 줄은 잘 몰라도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또 다른 단어가 있는데, 바로 ‘사우나’다. 뜨거운 돌에 물을 축여 증기를 내는 전통 방식의 사우나 문화는 핀란드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졌다. 바로 옆 건물에 핀란드식 ‘사우나’가 있고 핀란드풍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 경기 양주에 있는 ‘카페 휘바’에서 마티 헤이모넨 주한 핀란드 대사를 만났다.
날씨가 화창했다. 헤이모넨 대사는 인터뷰 전에 식당 주변을 한 바퀴 걷자고 했다. 카페 휘바는 3만3000㎡ 규모로 조성된 ‘헤세의 정원’이란 복합문화공간 안에 있다. 단체행사를 할 수 있는 장소와 레스토랑, 사우나, 산책로 등이 있다. 근처 텃밭엔 갓 캔 감자가 바닥에 늘어져 있었다. 카페 휘바에서는 감자 외에 버섯, 허브 등을 직접 길러 요리 재료로 사용한다고 했다.
“핀란드에선 집 주변 숲에서 버섯 딸기 등 식재료를 얻곤 합니다. 이곳도 주메뉴는 이탈리안 퓨전 음식이지만 가까운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를 쓰는 점에선 핀란드 음식의 철학이 담겨 있는 셈이죠.”
단순하고 실용적인 게 핀란드 문화
헤이모넨 대사는 어릴 적 외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산타마을’ 소년이었다. 핀란드 남부 세이나요키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직장을 따라 ‘산타마을’로 유명한 북부 라플란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산타마을과 극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오로라를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곳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외국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관광객들을 보며 저 사람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곳은 어떤 곳일까 상상했어요. 자연스럽게 외국에서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고 교류를 증진하는 외교관을 꿈꾸게 됐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주문한 음식이 식탁에 놓였다. 먹물크림 리소토와 버섯 피자 등 이탈리아 음식이 주메뉴였지만 핀란드 가정식 감자 그라탱과 연어 샐러드 등 핀란드 음식도 몇 가지 눈에 띄었다. 핀란드에서 감자는 한국의 밥과 같다며 헤이모넨 대사가 감자 그라탱을 권했다. 크림소스와 함께 입에 넣으니 부드럽고 담백했다.
헤이모넨 대사는 “핀란드 요리의 특징은 재료에 다양한 맛을 가미하기보다 좋은 재료를 써서 본연의 맛을 살리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리법도 대개 굽고, 말리고, 소금을 뿌리는 세 가지로 단순하다고 했다. “완성된 요리를 보면 어떤 재료를 썼는지 한눈에 알 수 있는 게 핀란드 요리의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헤이모넨 대사가 한국 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삼겹살. 채소, 김치 등과 함께 먹으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헤이모넨 대사는 담백하고 실용적인 것은 핀란드 음식뿐 아니라 핀란드 디자인의 철학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쓸모가 있어야 아름다움도 가치 있고, 단순할수록 아름다움이 더해진다는 것. 대사는 손을 뻗어 식당 내부 곳곳에 장식돼 있는 핀란드 생활용품을 가리켰다. “저기 걸린 커튼은 핀란드의 대표 브랜드 마리메꼬 것입니다. 단순한 패턴이 브랜드의 상징이죠. 한국에서도 최근 북유럽 인테리어 소품이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헤이모넨 대사는 접시에 연어샐러드를 덜며 말을 이었다. “핀란드인과 한국인은 비슷한 면이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핀란드 사람을 설명하는 단어 중에 ‘시수(sisu)’라는 말이 있습니다. 은근하고 끈기 있는 정신이란 뜻입니다. 핀란드는 600년가량 스웨덴 식민지였고, 그 다음 100년은 러시아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독립 뒤 곧바로 좌우 내전이 벌어져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죠. 하지만 오랜 식민지 기간 동안에도 핀란드어를 지켜나갔고, 1960년대 이후 경제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한국 역사와 닮은 점이 있지 않은가요? 그래서인지 직선적이고 담백한 한국인의 성향이 핀란드인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한국이 활용 못하는 자원은 여성”
파스타와 피자가 바닥을 드러낼 때쯤 헤이모넨 대사가 무엇인가 생각났다는 듯 질문을 하나 던졌다. “한국이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거의 활용하지 않은 자원은 무엇일까요.”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기자에게 그가 내놓은 대답은 “여성”이었다. 한국에선 많은 여성이 훌륭한 교육을 받지만 그들의 역량이 대부분 자녀를 기르는 데만 쓰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 25~54세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2.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6.2%)보다 훨씬 낮다. 반면 핀란드는 지난해 OECD가 여성의 사회진출 정도와 남녀 임금격차 등을 종합해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 가장 양성이 평등한 국가 1위에 꼽혔다. 한국은 순위가 가장 낮았다. “핀란드는 유럽에서 참정권과 피선거권을 여성에게 확대한 첫 번째 국가입니다. 양성평등 문화는 핀란드의 뿌리 깊은 유산인 셈이죠. 여성이 일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그만큼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제도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습니다.”
‘유리천장 지수’와 달리 교육수준을 평가하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선 핀란드와 한국이 매번 1·2위를 다툰다. 핀란드 교육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한국에선 ‘SKY대(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가장 좋은 대학교라고 하지만 핀란드에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교를 가장 좋은 대학교라고 합니다.” 그는 핀란드 부모들은 어떤 학교인지보다 어떤 전공을 선택할 것이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적성을 찾아주는 교육이 핀란드 교육의 힘이라는 설명이었다.
“평창올림픽 계기로 양국 관계 진전됐으면”
후식으로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접시에 핀란드 국기가 앙증맞게 꽂힌 케이크 조각이 나왔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티라미수를 조금 잘라 입에 넣은 뒤 헤이모넨 대사에게 한국에 있는 동안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가 되물었다. “한국에서 핀란드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유럽에서도 북부에 있는 핀란드인 만큼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이런 표정을 읽었는지 그는 대답을 듣기 전에 말했다.
“서울에서 비행기 직항편을 타면 핀란드 수도 헬싱키까지 8~9시간 걸립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7~8시간 정도 걸리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와 큰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막연히 핀란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곳, 가기 힘든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나라이기 때문에 마음의 거리가 멀어서 그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 대사로 있는 동안 한국인들이 핀란드를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립니다. 핀란드에서는 하계올림픽보다 동계올림픽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길가에서 크로스컨트리 스키를 즐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겨울 스포츠를 즐깁니다. 평창 올림픽을 핀란드인이 한국을 더 많이 방문하고, 한국인이 핀란드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는 계기로 삼고 싶습니다. 올림픽 기간 평창 근처에서 핀란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핀란드 하우스’를 마련하는 방안을 협의 중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9월쯤 되면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기대해주세요.”
■ 헤이모넨 대사의 단골집 카페 휘바
‘미니 핀란드’에서 즐기는 감자요리…투명텐트로 만든 호텔도
헤세의 정원에는 카페 휘바말고도 한정식과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바베큐 시카’, 단체행사를 위한 공간 ‘셰프하우스’, 투명 텐트에서 글램핑(필요한 도구들이 모두 갖춰진 곳에서 안락하게 즐기는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버블호텔’, 핀란드식 사우나와 숙박 시설을 갖춘 ‘캐빈 푸우’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조원장 대표(57)는 25년간 핀란드산 천연 감미료와 자일리톨 성분을 한국에 수입하는 핀란드계 회사에서 일했다. 퇴직 후 부모가 1972년부터 가꿔 온 송추농원을 재정비해 헤세의 정원으로 재탄생시켰다.
카페 휘바의 주메뉴는 이탈리아 음식에 핀란드나 한국 식재료를 접목한 퓨전요리. 리코타치즈 가지구이 피자(2만3000원), 새우날치알 로제파스타와 호두브레드(1만9000원) 등이 있다. 핀란드식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핀란드 가정식 감자요리(1만6000원)나 핀란드풍 연어카나페(1만9000원)를 주문하면 된다. (031)877-5122
■ 마티 헤이모넨 대사
△1957년 핀란드 세이나요키 출생 △1986년 핀란드 외교부 담당관 △1994년 주(駐)스위스 핀란드 상임공관 참사관 △1999년 주(駐)독일 핀란드 대사관 공사참사관 △2001년 주(駐)일본 핀란드 대사관 공관차석, 공사참사관 △2004년 핀란드 외교부 수출진흥 및 국제화담당 △2008년 주(駐)상하이 핀란드 총영사 △2012년 주(駐)한국 핀란드 대사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