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고정수 씨가 노화랑에서 열릴 개인전에 출품한 돌 조각 ‘밝은 세상’.
조각가 고정수 씨가 노화랑에서 열릴 개인전에 출품한 돌 조각 ‘밝은 세상’.
“조각이란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인 것 같아요. 때론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작업실에 갇혀 외로움과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거든요. 고독한 작업이지만 관람객이 제 작품을 보고 행복할 수만 있다면 이 험난한 길을 계속 갈 겁니다.”

9월2~22일 서울 관훈동 노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고정수 씨(68·사진)의 말이다. 그는 사실적 여체 조각의 개척자다. 홍익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40여년간 고대 불상과 인체미학을 결합해 한국적인 여성상을 형상화해 왔다. 1981년 국전에서 대상을 받은 그는 금호예술상(1985년), 선미술상(1986년), 문신미술상(2013년)을 잇달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그는 “고달픈 삶 속에서도 조각가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는 아무나 접근하기 어려운 ‘유별난 세계’라는 확신이 든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브론즈, 돌, 테라코타, 강철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의인화된 곰 조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곰의 유희’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곰을 의인화해 사람들의 행복을 형상화한 곰 조각 39점을 내놓는다. 고씨는 “가끔 ‘여체를 조각하다가 웬 곰이냐’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지만 예술 작품은 작가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행복과 감동을 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칠순을 앞둔 나이에도 그는 고단한 현대인에게 웃음을 안겨주는 이미지를 찾고자 무던히도 애썼다. 2년간 곰 조각에 매달려온 이유다. 예술은 모든 사람이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곰 조각을 시작했다는 그에게 이제 곰은 단순한 모티브가 아니라 주제이며, 조각 인생 제2막의 새로운 생명줄이 됐다.

곰의 미세한 움직임을 잡아내기 위해 애쓰는 고씨는 관람객의 미소를 떠올리며 그동안 숨겨뒀던 손재주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작품 형태 역시 공공 조형물을 비롯해 부조, 테라코타 등 다양하게 제작해 관람객과의 친근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동물학자처럼 곰의 생태를 연구하고, 곰의 다채로운 이미지를 사진으로 찍어 조각에 적용하고 있다.

선이 굵고 탄탄한 곰 조각의 정수를 보여주는 그의 작품에는 우리의 모습처럼 귀여울 뿐만 아니라 위안과 힐링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트’를 머리 위로 그리는 곰, 말뚝박기 놀이를 하는 곰, ‘사이좋게 지내자’며 딸을 안아주는 엄마 곰, 꿀단지를 안고 꿀을 먹는 곰 등 보기만 해도 익살스럽고 평화롭다. 그동안 작업했던 여체의 미학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가 깎아내 혼을 불어넣은 곰 조각은 편안하면서도 푸근해 가족애와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다.

예술의 대중화를 추구하고 싶다는 고씨는 “우리와 닮은 ‘곰’을 보면서 관람객들이 잠깐이라도 고뇌에서 벗어나 웃을 수 있다면 제 소임은 끝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품세계와 그 가치를 지키는 것은 오직 나뿐일 것”이라며 “찾는 이가 없어 고독하다면 그 역시 숙명”이라고 초연한 모습을 보였다. (02)732-35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