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초상', '몸짓 언어'로 풀어낸 천재 시인의 굴곡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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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뷰
1919년 러시아 혁명 이후 궁핍했던 시기, 딸 이리나를 살리기 위해 국영 고아원에 보냈으나 아이는 고아원에서 굶어 죽는다. 1922년 가난을 피해 파리, 베를린, 프라하를 전전하다 다시 러시아로 돌아온다. 1941년, 남편 세르게이 에프론이 간첩 혐의로 체포돼 처형된다. 같은 해 그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여성 시인 마리나 츠베타예바다. 러시아 혁명의 희생양이었던 그가 인정받은 건 1960년대. 그의 시가 다시 출판되기 시작한 이후였다.
츠베타예바의 삶을 그린 극단 풍경의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초상’이 지난 28일부터 서울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러시아계 미국 작가 소피아 로마의 원작으로, 국내 초연이다. 혁명을 강요당했던 시인이 남겨놓은 시어들이 무대 위에서 되살아난다.
츠베타예바와 극을 이끌어가는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의 시 ‘내 이름은 마리나’를 읊으며 연극을 시작한다. 극은 현실에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릴케가 그의 독백과 회상에 동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츠베타예바는 시를 썼다. 시를 쓰는 것을 원치 않았던 어머니와의 갈등과 딸 이리나의 죽음이 그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시대(혁명)의 강요’였다. 그는 쉬지 않고 혁명을 거부하는 시를 썼다. ‘시대를 노래하지 않는 여성 시인’이라는 낙인과 함께. 남성 시인 오시프 만델스탐은 츠베타예바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남성 시인들은 민중의 언어로 역사를 창조한다. 반면 여성 시인들은 자기 안에 함몰돼 민중을 비웃는다.”
츠베타예바는 순수하게 시 자체를 원하지만 시대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고통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그는 또 다른 여성 시인 소피아 파녹과의 동성애적 사랑을 통해 시를 탄생시키는 본질은 ‘외로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성 연출가 박정희의 압축적이면서도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시적 언어들은 대사뿐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무대화된다. 특히 소피아 파녹과 츠베타예바의 사랑은 언어가 아니라 뜨거운 몸짓으로 표현된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동성애 시인 ‘사포’가 츠베타예바에게 투영되는 순간이다. 연극을 완성시키는 주역은 바닥을 기며 고통스러워하는 츠베타예바 역의 서이숙이다. “나는 시인이 될 거야. 엄마도, 여자도, 매춘녀도 아닌 진정한 시인이”라는 그의 외침이 절절하다. 9월6일까지, 3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츠베타예바의 삶을 그린 극단 풍경의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초상’이 지난 28일부터 서울 동숭아트센터 꼭두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러시아계 미국 작가 소피아 로마의 원작으로, 국내 초연이다. 혁명을 강요당했던 시인이 남겨놓은 시어들이 무대 위에서 되살아난다.
츠베타예바와 극을 이끌어가는 독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의 시 ‘내 이름은 마리나’를 읊으며 연극을 시작한다. 극은 현실에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릴케가 그의 독백과 회상에 동행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츠베타예바는 시를 썼다. 시를 쓰는 것을 원치 않았던 어머니와의 갈등과 딸 이리나의 죽음이 그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진짜 고통은 ‘시대(혁명)의 강요’였다. 그는 쉬지 않고 혁명을 거부하는 시를 썼다. ‘시대를 노래하지 않는 여성 시인’이라는 낙인과 함께. 남성 시인 오시프 만델스탐은 츠베타예바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남성 시인들은 민중의 언어로 역사를 창조한다. 반면 여성 시인들은 자기 안에 함몰돼 민중을 비웃는다.”
츠베타예바는 순수하게 시 자체를 원하지만 시대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고통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그는 또 다른 여성 시인 소피아 파녹과의 동성애적 사랑을 통해 시를 탄생시키는 본질은 ‘외로움’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성 연출가 박정희의 압축적이면서도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시적 언어들은 대사뿐 아니라 이미지를 통해 무대화된다. 특히 소피아 파녹과 츠베타예바의 사랑은 언어가 아니라 뜨거운 몸짓으로 표현된다.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인류 최초의 동성애 시인 ‘사포’가 츠베타예바에게 투영되는 순간이다. 연극을 완성시키는 주역은 바닥을 기며 고통스러워하는 츠베타예바 역의 서이숙이다. “나는 시인이 될 거야. 엄마도, 여자도, 매춘녀도 아닌 진정한 시인이”라는 그의 외침이 절절하다. 9월6일까지, 3만원.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