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코가 석자'인 삼성중공업, 위탁경영 아닌 부분 경영협력 선택
수출입은행과 채권단은 애초 성동조선해양을 삼성중공업이 위탁경영해주기를 원했다. 책임지고 경영하다가 인수까지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삼성중공업은 펄쩍 뛰었다. 2분기에 1조5000억원대의 적자를 낸 마당에 성동조선을 책임지는 건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팽팽한 이견은 결국 ‘위탁경영’이 아닌 ‘경영협력협약’으로 절충됐다. 성동조선의 인사 노무 재무 등 경영 전반은 수은이, 선박 영업과 구매 생산 기술지원 등은 삼성중공업이 맡기로 했다. 다소 어정쩡한 타협이지만, 성동조선은 일단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어정쩡한 타협 ‘경영협력협약’

성동조선은 지난 7월 말 수주잔량 기준 세계 9위 중소형 조선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규 수주가 끊기면서 유동성 위기가 발생했고, 2010년 4월부터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다. 성동조선 최대주주인 수은은 지난 6월 삼성중공업에 성동조선의 위탁경영을 요청했다.

삼성중공업은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 실사를 마쳤다. 시너지 효과가 없지 않을 것이란 결론을 얻었지만 삼성중공업 자체가 문제였다. 2분기에 1조5000억원 적자를 내는 등 말 그대로 ‘내 코가 석 자’였기 때문이다. 성동조선 노동조합이 강성노조인 전국금속노조에 속해 있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위탁경영이 이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힘들다는 판단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은과 채권단은 삼성중공업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경영협력협약에서 타협점을 찾았다고 한다. 여기엔 성동조선의 조기 정상화를 바라는 당국의 요청도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삼성중공업은 재무적 리스크는 피하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실무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력하는 것으로 협상을 매듭지었다.

◆선박 수주에서 시너지 날 듯

삼성중공업과 성동조선은 선박 수주에서 당장 시너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은 해양플랜트와 초대형 선박에 강점이 있고, 성동조선은 180K급 벌크선, 158K급 탱크선 등 중소형 선박 건조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자체 영업망을 활용해 성동조선의 신규 선박 수주를 주선하는 동시에 성동조선으로부터 블록 등 부품을 제공받겠다는 구상이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외국 선주 중에는 1만8000TEU(20피트 컨테이너 1개 단위)를 주문하면서 단거리 운송용 중소형 선박을 추가 주문하는 경우가 있다”며 “성동조선에서 이 같은 물량을 소화해주면 두 회사의 원가 경쟁력과 생산관리 역량이 향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동조선이 과거 삼성중공업의 부품 공급사였던 것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성동조선은 2008년 독자적인 선박 건조에 나서기 전까지 주요 조선사에 선박 모듈인 블록을 제공하던 회사였다. 또 두 회사가 각각 통영과 거제 바다를 마주 보고 있어 필요한 기자재 등을 쉽게 실어 나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조선업 구조조정 급물살

성동조선에 대한 경영 일부를 삼성중공업이 맡기로 한 것은 조선업 재편의 신호탄이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남은 과제는 성동조선과 마찬가지로 자금난에 빠져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받고 있는 STX조선해양, SPP조선, 대선조선 등의 처리 방향이다.

STX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지난 2분기 3조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한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을 한데 묶어 구조조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산업은행은 최근 대우조선 구조조정반과 STX조선 구조조정반을 합쳐 ‘조선업 정상화 지원단’을 출범했다. 산업은행은 우선 이달 말께 대우조선에 최소 1조원 규모의 증자를 한 뒤 STX조선을 대우조선에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경영협력협약

BCC(business co-operation contract). 복수의 회사가 협력을 통해 특정 기업을 경영하자는 협약. 성동조선에 대해 삼성중공업은 영업 구매 생산 기술을 맡고, 수출입은행은 재무 노무 등을 맡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김보라/김일규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