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찡한 '축구 미생'들의 사연…시청자들 마음 울린다
KBS 2TV 예능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일레븐’(연출 최재형) 제작진은 지난 1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보조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이랜드FC와의 축구 평가전을 찾았던 시청자들에게 공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사과했다. 청춘FC의 국내 첫 평가전인 이 경기에 주최 측은 약 1000석의 관람석을 확보했지만 3000명 이상이 몰려 발길을 돌린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평가전은 평일 오후 4시에 열렸음에도 제작진의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파가 몰렸다. 관람객들은 벨기에 전지훈련을 거친 청춘FC팀의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려고 했다. 그동안 1차 합숙, 2차 최종 엔트리 선발 등을 거치면서 합격과 불합격으로 갈리는 순간 눈물을 흘리는 선수들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줬다. 이날 경기 내용은 2~3주 뒤 토요일 오후 10시25분에 방송된다.

‘청춘FC 헝그리일레븐’은 개인 사정으로 축구선수의 꿈을 접은 청춘들이 안정환·이을용·이운재 감독의 지도 아래 재기하는 과정을 담은 논픽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다.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늦은 밤에 방영됨에도 4~5%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가슴 찡한 '축구 미생'들의 사연…시청자들 마음 울린다
지난 7월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일반 예능과는 달리 연예인 출연자가 한 명도 없는 다큐멘터리 같은 형식으로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방송평론가 김교석 씨는 “실패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되 이를 해피엔딩 드라마로 끝내는 게 아니라 어두운 현실과 함께 담담하게 전달하는 게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제작진은 우선 흩어져 있던 축구 유망주들을 찾아 나섰다. 한때 한국 축구의 미래로 평가받았지만 잦은 부상과 불운으로 축구계를 떠났던 선수, 가난한 형편에 좌절했던 유망주, 잘못된 에이전트 때문에 추락한 선수,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축구를 포기했던 선수,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재기하려는 선수 등 ‘축구 미생’들의 사연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우리네 청춘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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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연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안정환 감독은 “경쟁 없이는 성장도 없다”고 강조했다. 후보 선수들은 엄청난 노력으로 무수한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땀방울만이 진실이었다. 2300여명의 후보 중 최종 25명이 선발됐다.

이들의 도전기는 ‘인간극장’의 예능 버전처럼 그려졌다. 선수들의 생존경쟁은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표현됐다. 예를 들어 한 선수가 경기 중 각막 손상을 입었을 때 시청자들은 함께 안타까워했고,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에 안도했다. 훈련을 마친 선수들이 숙소로 돌아와 침대 위에 누웠을 때 시청자들도 포근함을 느꼈다.

해외 훈련차 프랑스 공항에 도착한 선수들이 너무 설렌 나머지 짐도 챙기지 않고 인증샷을 찍기 바빴을 때 안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목적지로 가는 버스 안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하지만 선수들은 혼자가 아니라 동료들과 합숙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뻐했고, 최종 엔트리에 들기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희망의 빛도 쐈다. 벨기에 2부 리그팀 A.F.C 투비즈와의 경기에서 1 대 0으로 패배했지만, 올 시즌 1부 리그로 승격한 생트뤼덴을 상대로 2 대 1 깜짝 승리를 거뒀다.

청춘FC는 안 감독 등과 축구 미생들이 일궈가는 작은 기적이다. 선수 시절 ‘반지의 제왕’이란 수식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안 감독은 헌신과 봉사의 지휘봉을 잡고 이운재·이을용 감독을 영입했다. 안 감독은 “가장 큰 목표는 청춘FC에 합류한 선수들이 팀을 찾는 것”이라며 “더 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성과를 일궈보고 싶다”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