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관료와 밥을 먹으면 심심하다. 요즘 ‘핫(hot)한 종목’ 얘기나 연예계 비사는 기대해선 안 된다.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 오르고 내리는 거국적 문제를 논하는 자리다. 게다가 관료는 기자들 앞에서 입단속이 철저하다. 말실수라도 이끌어내려던 기자의 잔머리는 맥주 두어 잔에 풀려버린다.

그래도 소박한 재미가 있다. 중국 경제 둔화로 주가와 환율이 휘청거리던 지난달 말. 대형 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컸다. 기획재정부 A국장을 점심에 만났다. 그는 대뜸 윈드서핑 얘기를 했다. 돛이 달린 보드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파도를 타는 수상레포츠다.

“처음엔 잔잔한 파도에도 넘어지면서 ‘이걸 어떻게 타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멀리 가려면 더 큰 파도를 타야 하죠. 체력을 키우면 점점 더 높은 파도를 넘을 수 있는데, 그러다 과신하면 한순간 넘어져버리는 거예요.”

듣다 보니 한국 경제 얘기였다. 선진국 문턱이 멀지 않았다며 자축하던 한국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로 무너졌다. 알고 보니 큰 파도를 견딜 체력이 아니었다. 뼈아픈 체질 개선이 불가피했다. 2008년 금융위기의 거센 파도가 글로벌 경제 전부를 덮쳤다. 이때 한국 경제는 간신히 넘어지진 않았다.

“파도를 넘고 나서야 ‘아 넘었다’ 하면서 느껴요. 내가 좀 더 컸구나. 지금 또 다른 파도가 오고 있는데…. 잔잔한 파도 같아도 막상 가보면 엄청나거든요. 지금은 작은데 갑자기 집채만큼 증폭되기도 하고요. 예측이 어렵죠. ”

중국 경제 위험이 커져도 한국은 펀더멘털(기초체력)이 강해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문제는 이 위험이 다른 신흥국 불안과 맞물려 위기로 증폭되는 경우다. 또 하나, 윈드서핑의 핵심인 ‘하체의 균형’이 깨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라고 했다. 정부와 민간이라는 두 다리가 튼튼해야 안 넘어지는데, 기업이 여느 때보다 취약하다는 것이다.

경제 베테랑들의 비유법은 기상천외하지 않다. 쉽고 소박하다. 기자들이 경제 전망을 물을 때 내공 깊은 사무관들은 “지금 내리는 게 소나기인지 장맛비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예전엔 일시적인 침체를 겪고 경기가 곧잘 반등했다(소나기). 하지만 지금의 부진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비슷한 장기 저성장(장맛비)일 수도 있겠다는 걱정 섞인 답변이다.

B사무관에 따르면 즐겨 쓰던 비유가 바뀌기도 한다. “박근혜 정부 초기엔 경제 ‘불씨’를 살리자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로 작년 초엔 경기회복세가 뚜렷해져 ‘불꽃’이란 강한 단어로 바꿔 쓰기도 했죠. 그런데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겪으면서 이 단어를 어느새 안 쓰게 됐네요.”

한국은행의 고위 관계자 C씨는 금융위기 수습으로 정신없던 2009년 가을을 떠올린다. “연이어 금리를 내렸는데 생각보다 경제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9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이성태 당시 한은 총재가 금리 인상도 가능하다는 신호를 줬어요. 언론이 난리가 났죠. 경기가 이런데 금리를 올리냐고.”

이후 열린 경제동향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 다. “영하 30도의 혹한이 온다고 해서 아궁이에 장작을 가득 땠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영하 5도 정도였다. 그러면 장작개비를 몇 개 빼야 하지 않겠느냐.”

반대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명쾌한 비유다. 좀 촌스럽다는 게 약점이지만. 시골 생활을 한 적이 없는 젊은 세대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쨌든 현장에서 직접 위기를 겪고 수습했던 베테랑이나 가능한 비유법이다. 윈드서핑의 생생한 비유를 떠올린 A국장에게 “바다에서도 경제 생각을 한 거냐”고 물었다.

“윈드서핑을 어디서 해요(웃음). 책에 레포츠 얘기가 나오길래 떠올린 거예요.”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