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GHSA 서울회의, 보건안보 협력의 시발점
지난 수개월간 우리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우리와는 무관할 것 같던 메르스가 국민적 우려를 자아내고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초래했다. 일부 국가들은 한국에 대한 과도한 여행경보를 발동, 자칫 외교적인 문제로 번질 수도 있었다.

국민에게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한 것은 우리가 직접 경험한 메르스뿐만이 아니다. 작년 중반부터 올초까지 서부아프리카를 공포에 빠뜨린 에볼라 사태는 의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제보건 시스템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당시 에볼라 사태는 일부 국가의 보건문제가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 전체의 평화와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위기상황을 초래했고 초국경적 감염병 문제에 대한 국제 대응 시스템에 경고음을 울렸다. 유엔에선 ‘평화유지활동’을 상징하는 ‘블루헬멧’에 빗대 ‘보건유지활동’을 뜻하는 ‘화이트코트’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세계적 미래학자인 제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그의 저서 ‘총, 균, 쇠’에서 “질병은 역사를 변화시키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했다. 14세기 흑사병은 유럽인구의 3분의 1을 감소시켜 봉건사회의 몰락을 앞당겼고, 신대륙 개척기에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쓰러뜨린 것도 유럽인의 총칼이 아니라 미지의 병원균이었다.

중요한 것은 감염병과의 전쟁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새롭고 다양한 유형의 감염병들이 현대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조류인플루엔자, 에볼라 등 대규모 감염병의 출현은 보건 이슈를 안보적 관점에서도 다뤄야 한다는 인식 전환을 가져왔다. 이런 배경 아래 작년 미국 주도로 보건안보 시스템 강화를 위한 ‘글로벌 보건안보구상(GHSA)’이 출범했다.

오늘부터 GHSA 제2차 고위급회의가 서울에서 사흘간 열린다. 작년 9월 미국 워싱턴DC에서 첫 고위급 회의가 열렸고 이번이 두 번째다. 한국이 2차 회의를 주최하게 된 것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한국 정부는 메르스를 비롯한 감염병의 예방·탐지·대응 경험을 공유할 예정이다. 이번 제2차 회의에는 각국 보건장관들을 포함해 약 50개국 고위대표들이 참석한다. 이들은 보건 안보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고 감염병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체계 구축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국제 보건안보 시스템 강화를 위한 청사진인 ‘서울선언문’도 채택한다. 이번 회의에서 논의한 보건안보 이슈는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 의제에도 포함할 예정이다.

한국은 에볼라 사태 당시 긴급구호대를 파견해 에볼라 조기 퇴치에 기여했다. 한국 정부는 바이러스 발생 초기부터 에볼라 확산방지를 위해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등에 60만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고 에볼라 위기의 시급성 및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응노력에 동참하기 위해 작년 9월 추가로 500만달러를 지원했다.

한국은 앞으로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보건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통해 개발도상국의 보건역량 강화를 지원해 나갈 예정이다. 보건안보 분야에서의 이런 국제협력은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이 에볼라 긴급구호대 해단식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한국 정부가 새로운 외교 브랜드로 적극 추진 중인 인도주의 외교의 핵심정책으로 자리잡고 있다.

보건안보 협력은 동북아 국가 간 연성안보 분야 협력을 통한 신뢰 구축이라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의 핵심 아젠다이기도 하다. 북한의 열악한 보건인프라를 감안할 때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좋은 대상이 될 수 있다. 메르스와 에볼라 사태의 최전선에 섰던 한국이 이번 회의를 통해 국제 보건안보 분야에서 중심 역할을 수행, 글로벌 공공선 증진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윤병세 < 외교부 장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