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서대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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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천자칼럼] 서대문역](https://img.hankyung.com/photo/201509/AA.10488516.1.jpg)
서대문의 원래 이름은 돈의문(敦義門)이다. 태조 때인 1396년 도성의 다른 문과 함께 건축했다가 태종 때 풍수지리설에 위배된다고 해서 폐쇄했다. 세종 때 새 성문을 쌓고 돈의문이라는 이름을 다시 붙였다. 이후 새문, 새문안, 신문로 등의 이름이 생겨났다. 1915년 일제 도시계획에 따라 철거됐는데 정동사거리에 ‘돈의문 터’ 표지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시작하는 의주로를 통해 중국과 왕래했다. 중국 사신도 이 문으로 들어왔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주로 몽진한 것도 이 문을 통해서였다. 근대에 들어서는 서양문물이 들어온 통로이기도 했다. 한때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파연극 ‘홍도야 울지 마라’가 적십자병원 건너편에 있던 동양극장에서 상연돼 초만원을 이뤘다.
지금은 호텔로 개축된 화양극장도 서대문의 문화 아이콘이었다. 전성기였던 1980년대에는 홍콩영화를 독점 상영하면서 숱한 일화를 낳았다. ‘예스마담’ ‘영웅본색’ ‘천녀유혼’ 등 흥행작이 이어지자 심야표까지 매진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기다리던 관객들의 항의로 새벽 2시에 추가편성을 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홍콩 스타 왕조현과 장국영이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인근 서대문 독립공원에는 독립문과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있다. 독립문은 조선이 독립국이라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영은문을 부수고 그 터에 지은 문이다. 서재필의 주도로 건립했는데 현판은 이완용의 작품이다. 서대문형무소에는 독립투사들과 시인 정지용 등 조선의 저명인사들이 갇혔다.
44년 전에 세워진 서대문고가차도는 최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울시는 원래 고가차도 철거 후 돈의문을 원형대로 복원할 계획이었다. 이를 경희궁 서울역사박물관, 경교장(현 강북삼성병원), 서울성곽 등과 묶어 역사문화중심지로 개발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돈의문 복원은 예산과 원형 복원 등의 문제로 논란을 빚다 2022년까지 중장기 과제로 미뤄진 상태다. 이래저래 사연도 많고 굴곡도 많은 돈의문, 새문, 서대문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