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츠 개혁이 개방국가 만들어
우리는 북한 난민 맞을 준비 되었나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얼마 전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독일 기업인들은 난민을 새로운 기회로 보고 있다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특히 소상공인들은 그들이 조속히 노동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정도다. 미장원 주인들이, 작은 공장주들이, 가게 주인들이 난민을 더욱 반긴다는 기사는 왜 독일이 피난처가 되었는지 잘 말해준다. 독일 정부는 올해 80만명의 난민을 받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발칸과 지중해의 사선을 넘어 삶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독일이 위대한 피난처로 부상한 배경은 우리가 짐작하는 그대로다. 일손이 모자라는 것이다!
독일 성장률은 1~2%대로 떨어졌지만 실업률은 4.7%의 완전고용 상태다. 일손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다. 더구나 문화적 배경이 달라도 어느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는 제조업 일자리가 독일에는 여전히 막강하다! 장기적 전망도 일손 부족이다. 근로가능인구 4600만명이 30년 안에 2900만명까지 줄어든다는 전망이 나와 있다. 정년을 70세로 늘려도 추가되는 노동인구는 440만명에 불과하다. 중국 쇼크가 있다고 하지만 독일 제품은 해외에서 여전히 잘 팔린다. 벤츠는 60%를 중국에 판다. 독일 산업총연맹(BDI)의 울리히 그릴로 회장은 “(난민을) 노동시장으로 빨리 흡수할 수 있다면 상생이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피력한다.
신이 하는 일은 종종 인간의 단기적 예상을 넘어선다. 지금 독일이 그렇다. 난민사태가 10년만 전에 터졌더라면 독일이야말로 남부와 동부 국경에 긴 철조망을 쳤을 것이다. 사실 독일만큼 배타적인 나라도 드물다. 20세기 나치즘은 게르만들의 악마적 배타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한 외국인 청소 체제와 다름없었다. 그랬던 독일이 지금은 시리아에서 에리트레아에서 방글라데시에서 터키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필사의 망명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다. 한 나라의 개방성이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이 선한 의지를 행동에 옮기는 조건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도록 만드는가 하는 문제를 새삼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 지금 우리 모두가 목도하고 있는 유럽의 난민 대이동이다.
독일은 통일 후 2004년까지 극심한 불황과 높은 실업에 허덕였다. 2004년엔 최고 12%의 역사적 실업률을 찍을 정도였다. 이 거대한 실업의 벽은 이후 10년 만에 4.7%까지 무너져 내렸다. 하르츠 노동개혁은 그렇게 적어도 노동시장에서만큼은 완전히 새로운 독일을 만들어냈다. 지금 우리는 한 나라의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똑똑히 보고 있다. 궁핍한 생활에서 풍족한 도덕이 나올 수는 없다. 미국의 위대한 노예해방도 마찬가지였다. 북부의 임금노동 제도가 남부의 노예노동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이 입증되고서야 노예들은 해방될 수 있었다. 지금 한국인들은 싸구려 정치에 압도되어 경제의 가치와 중요성을 잊고 산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계획은 과연 어디서 출발하고 있는지…. 한국은 2500만 가난한 친척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