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1~12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대만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의 ‘쌀’.
9월11~12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대만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의 ‘쌀’.
대만 출신 안무가 린화이민(68·사진)은 세계 현대무용계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꼽힌다. 지난 40여년간 고전과 무술, 서예 등 동양 문화 소재를 우아하고 매끄러운 몸짓으로 담아낸 작품을 선보여 호평을 받아왔다. 유럽의 저명 무용잡지 ‘댄스유럽’이 ‘20세기의 위대한 안무가’ 중 한 명으로 선정했고, 미국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아시아의 영웅’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몸짓으로 풀어낸 '쌀'…"아시아 정신 보여줄게요"
린화이민이 12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그가 1973년에 창단한 중화권 최초의 현대무용단 ‘클라우드 게이트’와 함께 11~12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2013년 발표한 ‘쌀’을 올리기 위해서다.

9일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린화이민은 “춤은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나오는 것”이라며 “작품에서 쌀을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내가 쌀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에도 쌀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다. 1978년 작품인 ‘유산’은 수확하는 농부들의 움직임을 춤으로 표현했고 1994년작 ‘방랑자들의 노래’에선 무대 바닥에 쌀 3.5t을 부어 배경으로 썼다.

“이번 작품은 쌀 생산지로 유명한 대만 남동부의 츠상(池上)에서 영감을 받아 표현했습니다. 넓은 들판 위로 바람이 불자 벼가 파도치듯 움직이는 것이 장관이더군요. 쌀이 자라고 수확되기까지의 과정을 춤으로 표현해 생명의 순환 과정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그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벼가 자라 쌀이 되기까지의 순환 주기는 인간의 인생 주기와도 맞닿아 있다”고 설명했다. 작품은 이런 순환을 보여주기 위해 무용수들의 몸짓과 함께 대형 영상을 활용한다. 츠상의 논에서 이뤄지는 농사의 전 과정을 2년간 촬영한 영상이다. 모내기 때 논에 댄 물에 비치는 구름, 수확 후 농부들이 땅에 지른 불길 등을 배경으로 무용수 24명이 춤을 춘다.

“공기 흙 바람 꽃가루 등 논밭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자연적 요소를 안무로 표현했습니다. 바람의 움직임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 벼 알곡처럼 움직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상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린화이민은 무용단원들에게 독특한 훈련을 시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단원들은 서예, 명상, 무술 등 동양 전통문화를 익혀 춤에 활용한다. 그는 “이번 작품을 준비할 때는 무용수들과 함께 츠상에서 쌀 수확을 도왔다”고 말했다. 무용수들이 직접 진흙을 밟고 바람을 느낀 경험을 가지고 자연을 표현하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는 설명이다.

그는 “작품은 단순히 어느 한 지역의 풍경을 표현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보이기 위해 다양한 문화를 반영한 춤과 음악을 활용했다. 그가 1974년 한국에서 배운 승무와 궁중무용은 자연스러운 호흡이 있는 동작의 바탕이 됐다. 배경음악으로는 중국 전통 민요와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오페라 아리아, 말러의 교향곡이 교차한다. 그는 “인간과 자연, 삶과 죽음이 합을 이루는 순수함을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