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수의 자본시장 25시⑬]다시 읽는 애덤 스미스…"정답은 공동체 자유주의"
[최명수의 자본시장 25시] 애덤 스미스(1723~1790)는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린다. 근대 경제학의 창시자인 그는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의 근본 문제를 총체적으로 인식하려고 했던 사회철학자다. 그가 영국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대학에서 12년 동안 강의한 도덕철학은 자연신학, 윤리학, 법학, 정치경제학으로 나뉜다.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 of the Wealth of Nations)>(1776)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란 표현을 썼지만, 그는 단순한 자유방임주의자가 아니라 반 독점론자요, 질서정책론자다. 사상의 자유, 정치적 자유, 경제적 자유를 사회 발전의 원리로 보았는데 여기서 경제적 자유는 시장의 확대다.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의 이 같은 애덤 스미스 연구는 ‘통섭’ 그 자체다. 근원적, 다면적, 총체적 접근이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상임고문이자 법경제학자인 그는 “법은 ‘보이는 질서’이고, 경제는 ‘보이지 않는 질서’다”라고 했다. 두 질서를 정확하게 이해하면 좋은 정책을 세울 수 있다고 설파했다. 서양의 법과 제도, 한국의 선비정신을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해서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는 공동체 자유주의가 정답이라고 역설했다. 지난 달 28일 서울 안국동 안국빌딩 신관에서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 체계’란 제목으로 진행된 박 교수의 강연과 토론을 2회에 걸쳐 정리했다. 박 교수는 자본주의의 전제와 원칙을 담은 <도덕감정론>(1996년, 2009년 비봉출판사) 의 번역자다.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 체계'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네이버문화재단 제공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애덤 스미스의 도덕철학 체계'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네이버문화재단 제공
◈“동감 정의 교환이 근대사회 자유와 질서의 원리”

근대 시민사회 형성기인 18세기 중후반. 애덤 스미스는 “이기적인 개인을 자유롭게 했을 때 사회 질서가 어떻게 유지될까”라고 되뇌곤 했다. 중세의 속박을 벗어난 근대적 시민사회의 구성과 질서 발전의 원리를 밝히기 위해 그가 찾은 단서는 자연신학이다. 그는 경험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신론(deism)에 착안했다. 이신론은 세상을 조물주가 창조했지만, 그 후에는 자기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는 내용이다. 스미스는 우주가 중력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숨은 성질이 있다고 봤는데 그것을 인간 본성에서 찾았다. 그게 윤리학이다.

케임브리지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의 이성이 있어서 사회 질서가 유지된다고 믿었다. 애덤 스미스가 속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도덕감정이 사회질서를 유지하게 한다고 봤다. 공자 맹자 주자 등 유가와 비슷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도덕감정을 갖는가.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1759)에서 ‘상호 동감의 즐거움(pleasure of mutual sympathy)’이라고 설명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론이다. 제3의 공평한 관찰자가 동감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인간은 스스로 자기 행동을 통제한다는 논리다.

◈“정의는 엄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이타적 행위가 확대되는 것을 인애(beneficence)의 덕, 이기적 행위가 제한·억제되는 것을 정의(justice)의 덕이라고 한다. 인애, 즉 사랑은 없어도 사회가 존속할 수 있으나 정의가 부재하면 사회는 붕괴한다. 정의의 원칙은 동감의 원리에만 의존해선 안 된다. 문법의 규칙처럼 최고도로 엄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이타적 행위는 과도하기 어렵지만, 이기적 행위는 쉽게 과도해 질 수 있다. 그래서 법학이 필요하게 된다. 스미스가 죽은 뒤 학생들이 갖고 있던 강의 노트를 묶어 낸 <법학 강의>(1895) 에 정의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법학강의>는 시민 사회에서 정치 행정 경제 일반 조직과 구성 원리를 밝히고 있다. 제1부는 정의, 제2부는 국가의 풍요(opulence)에 관한 부분이다. 정의의 파괴는 권리의 박탈 또는 침해를 의미한다. 인간은 개인의 권리(신체 명예 재산)와 가족 일원의 권리, 사회 구성원의 권리를 가진다. 이를 다룬 것이 1부의 공법, 가족법, 사법 분석이다. 보통사람들이 정의를 판단하는 근거는 효용이 아니라 동감이다. 정의의 기초는 ‘개인의 분개’와 ‘집단적 동감’이다. 실정법이 아니라 자연법 정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재화가 풍부하고 저렴해야 시민들이 정직 근면해져”

공권력으로 정의의 법을 실현한다면 사회는 스스로 질서와 조화 속에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을까. 스미스의 답은 ‘노(No)’다. <법학강의> 2부에서 런던과 글래스고의 사례를 들었다. 법적 규제가 많았던 파리에서는 살인 사건이 거의 매일 발생했다. 반면 두 세 개의 간단한 법률만 있었던 더 큰 도시 런던에선 1년에 3~4건에 그쳤다. 프랑스에는 봉건적 유습이 남아 귀족들이 많은 노비를 거느렸고, 이들이 쉽게 해고를 당하면서 매우 어려운 사정에 몰려 범죄행위를 일으켰다. 가신(家臣)을 한 사람 이상 둔 사람이 없는 글래스고에서는 에든버러보다 살인 사건이 드물게 일어났다.

모든 국민을 봉건적 관계에서 해방해 자유로우면서도 근대적 인간으로 만들어야 하는 데 그 방법은 상공업 발달과 국부증대다. 풍부한 재화를 저렴하게 공급해야 시민들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자립할 수 있고 정직 근면한 인간이 된다. <국부론>은 풍부와 염가는 어떤 질서 원리 속에서 이뤄지는가를 주제로 한다. 국부란 재화 즉 노동생산물인데, 노동생산성(숙련, 기교, 지적인 능력)을 높이는 게 분업의 힘이다. 분업의 세분화와 특화 정도가 높아지면 생산성이 높아지는 데 세분화 정도는 시장의 크기가 결정한다. 수요가 커서 대량생산이 필요할 때만 분업이 필요하다.

◈”독점은 공공의 풍요를 파괴하는 것“

왜 분업을 하는가. 그것은 인간이 가진 교환성향에 있다. 분업뿐 아니라 절약을 통한 자본의 축적도 국부를 증대시킨다. 산업자본이 요구하는 자유 경쟁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인도되어 사회의 이익을 증진한다. 이윤추구라는 이기적인 동기가 교환과 자유경쟁 즉 시장의 원리를 통해 모두에게 유리한 공익의 결과를 낳는다. 스미스는 단순한 자유방임론자가 아니다. “독점은 공공의 풍요를 파괴한다. 기업의 배타적 특권을 인정하는 것도 같은 효과가 있다”(법학강의 2부)라고 했다. “경쟁을 제한하는 것은 항상 상인과 제조업자에게 이익이 되고 공공의 이익과 충돌한다“(국부론)고 지적했다.

스미스의 정치경제학은 자유스럽고 공정한 경쟁시장 메커니즘의 작동을 전제로 한다. 스미스는 상인의 독점 이윤 추구 본능이 정치권력과 유착하여 생기는 각종 비능률과 불공정을 크게 경계하고 반대했다. 진정한 자유방임은 경제에 대한 정부의 조건없는 불개입(방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개입과 불개입을 동시에 요구한다. 경쟁을 제한하는 기존의 독과점 구조(동업 조합의 자율규제 등)에 대해선 개입 원칙, 즉 반독점 정책이 필요하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스미스식 자유방임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미스야말로 역사상 최초의 ’질서정책론자‘라 하겠다.

☞[최명수의 자본시장 25시⑭]"자본주의 250년은 고뇌와 투쟁의 역사"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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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수 한경닷컴 뉴스국 부국장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