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칼럼] 현장전문가 vs 논문전문가
독일을 처음 방문한 사람은 두 가지를 보고 놀란다. 하나는 시골에도 어김없이 ‘히든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이 있다는 점이다. 인구 수만명의 귀테슬로에 ‘가전업계의 벤츠’인 밀레가 있다. 스톨베르크에는 ‘단추의 제왕’ 프륌이 있다.

또 하나는 오랜 역사다. 프륌은 1530년, 필기구업체 파버카스텔은 1761년, 렌즈의 대명사 칼자이스는 1846년에 문을 열었다. 100년이 넘은 기업은 부지기수고 200년이 넘은 업체도 약 800개에 이른다.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에 따르면 세계 2700여개 히든챔피언 중 독일 기업이 1307개로 절반에 육박한다. 이들이 오랜 세월 세계를 주름잡는 비결은 무엇일까. 끊임없는 기술 개발과 독일인 특유의 근면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작업지시서의 이행, 글로벌 전략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독일 경쟁력은 ‘현장’서 나와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현장 전문가’를 중시하는 문화다. 1882년 본에서 문을 연 파이프오르간업체 클라이스의 건물은 목공소 수준으로 작고 허름하다. 종업원도 65명에 불과하지만 무려 50개국에 수출한다. 해외 마케팅에 적극 나서는 것도 아닌데 해외 시장 개척이 활발한 것은 각국에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다섯 명의 마이스터(장인)를 포함해 20년 이상된 장기 근속자들의 손끝에서 나온다. 자신의 직업을 천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독일어로 직업인 ‘베르푸(Beruf)’는 영어의 ‘직업(job)’과 ‘소명(calling)’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직업을 단지 ‘돈 버는 수단’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받은 소명’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이들의 손끝에서 명품이 탄생한다. 밀레의 세탁기도 전체 종업원의 약 60%에 이르는 25년 이상 장기 근속자와 135명의 마이스터 손에서 나온다.

독일인들은 마이스터를 존경한다. 학벌은 대개 고졸이지만 현장에서 땀흘려 최고봉에 오른 이들이 ‘메이드 인 저머니(Made in Germany)’를 이끄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협업하는 공대 교수들도 현장 경험이 풍부하다. 현장을 모르면 아예 학계에 발을 붙이지 못한다. 독일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이같이 현장에서 나온다.

공대는 ‘돈되는 기술’ 가르쳐야

한국의 수출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수출이 전년 동기보다 14.7%나 격감했다. 세계 경기 침체 못지않게 제조업 경쟁력이 추락하고 있어서다.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미래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현장 전문가를 우대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각 분야에서 마이스터를 키워야 한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가고 있다. 열처리 도금 같은 ‘뿌리 산업’에 내국인은 점차 사라지고 외국인 근로자는 갈수록 늘어 3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엔지니어를 길러내는 공대도 현장과 괴리된 경우가 종종 있다. 국립대 공대의 한 교수는 “기계공학과 교수 중 선반을 돌릴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그러니 공대생들도 기계를 다룰 줄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대는 논문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돈 되는 기술’을 연구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국내 기업들이 독일과 일본을 따라잡기는커녕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제품의 경쟁력은 화려한 논문이 아니라 기름때 묻은 기능인력의 손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김낙훈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