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다산과 함께 만덕산에 오르면
지난 초봄 미래창조과학부 제2차관 퇴임식 후 곧바로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유배지로 향했다. 전남 강진 만덕산 기슭이었다. 공직의 사표(師表)인 다산 선생을 18년간 품어 안아 그가 500여권의 저서를 쓸 수 있도록 독려했던 만덕산에 오르니, 한국 경제의 오늘이 다산 선생의 눈빛 속에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만덕산이 있는 강진은 아홉 개의 작은 지류가 합수된 탐진강 물길이 모여들어 ‘구강포’로도 불린다. 이곳에 오면 여러 가지 위대한 유산을 만날 수 있다. 가을에 문턱에 들어선 지금, 만덕산에 다시 올라 본다.

먼저 다가오는 건 다산의 열린 마음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유배지 인근 백련사의 혜장, 초의선사와도 종교의 벽을 넘어 친밀하게 교류했다. 산업과 기술, 학문 간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추구하는 창조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는 이같이 넓게 열린 자세에서 나온다.

강진만 건너 산재해 있는 청자도예지에서 구워낸 세계의 으뜸 브랜드 고려자기, 그중에서도 상감청자 또한 자랑거리다. 상감청자를 보면 실학 연구자로서의 다산의 면모를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 선도자)’가 돼야 한다고 권면한다. 이 역시 상상을 혁신으로 이끄는 창조경제의 근본이다.

강진만 오른쪽 자락에선 통일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가 큰 꿈을 품었던 청해진, 즉 지금의 완도군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이곳은 ‘땅끝’이 아니다. 태평양으로 향하는 관문이다. 창조경제는 장보고가 그랬던 것처럼 그 출발부터 세계화를 지향한다. 왼쪽을 돌아보니 나로도가 보인다. 두 번의 실패와 일곱 번의 연기 끝에 저 높은 우주를 향해 로켓과 위성을 쏘아 올린 하늘을 향한 관문이다.

처자식, 형제와 뿔뿔이 흩어져 강진 만덕산에 유배된 뒤에도 다산은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메시지가 21세기 창조경제의 이름으로 다시 살아 움직이고 있다.

올 한 해가 저물기 전에 만덕산에 올라 태평양을 향해 좌우를 둘러보길 바란다. 아직 많은 게 미지의 상태로 남아 있는 저 깊은 바다와 우주, 심오한 생명을 탐구하며 아픔을 털고 일어서길 바란다.

윤종록 <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jonglok.yoon@nipa.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