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길 화백의 ‘가을 서정’.
오용길 화백의 ‘가을 서정’.
“제 그림을 받쳐주는 요소는 전통 지필묵(紙筆墨)입니다. 필선의 힘을 바탕으로 수묵의 특성을 살리면서 서양의 풍경화적 요소를 과감히 수용해 그리죠.”

오는 22일까지 서울 압구정동 청작화랑에서 개인전을 여는 한국화가 오용길 화백(69·이화여대 명예교수)은 자신의 그림을 ‘수묵 풍경’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오 화백은 한결같이 한국화의 정통성을 고수하며 장식적인 것이나 시류에 빠지지 않고 전통 수묵담채화를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27세 때인 1973년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에서 문화공보부 장관상을 받아 일찍 두각을 나타낸 그는 선미술상, 월전미술상 등을 잇달아 수상하며 성가를 높여왔다.

‘사계절’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담양 소쇄원을 비롯해 설악산, 인왕산, 경복궁 등을 찾아 마음속에 그곳 풍경을 담아뒀다가 작업실에서 되살려낸 30여점을 내놓았다. 예전보다 훨씬 서정성이 두드러지고 색채도 화사해졌다. 빛을 따라 점점이 붓질한 점묘 기법의 독특한 변주도 돋보인다.

자연의 단순한 재현에서 벗어나 주관적 해석을 덧붙인 작품들은 고향의 장맛처럼 감성이 우러나고, 무엇보다 사계절을 생각나게 한다.

‘봄의 기운’ 시리즈에선 연초록의 나무와 풀이 산촌이나 돌담, 계곡 주변 등에 자리하고 있다. 아이를 등에 업은 여성이 거목을 쳐다보는 듯한 뒷모습을 보이고 한쪽 집 마당에는 빨래가 널려 있다. 시간이 지나 여름으로 들어서면 짙푸른 나무가 눈에 띈다. ‘유월’이라는 작품에선 빨간 장미의 향기를 맡으며 소곤소곤 대화를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붓질했다.

그는 “내 그림이 수채화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붓의 선이 다르다”며 “수묵의 맛을 한껏 살리고 풍부한 색감으로 ‘기운생동’에 역점을 둔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화 시장이 침체에 빠져 있지만 한국화의 정체성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계속 지켜야 할 우리 자산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는 “한국화와 서양화는 엄연히 다르며 한국화의 지필묵 맛과 같을 수는 없다”며 우리 전통 그림의 자존심을 내비쳤다. (02)549-311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