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하듯 스토리 떼었다 붙였다…'이야기 로봇'도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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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기자의 콘텐츠 블랙박스
<1>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할리우드 서사시스템 진화
1인 창작자가 완성하기보다 각 분야 전문가 모여 협업도
<1>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할리우드 서사시스템 진화
1인 창작자가 완성하기보다 각 분야 전문가 모여 협업도
영국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에는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비는 ‘벽’이 있다. 벽에서 반쯤 튀어나온 카트 모형 외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사람들은 몇십분씩 줄을 서서 기다린다. ‘해리포터’ 속 어린 해리가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가는 급행열차를 타기 위해 찾아가는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재현해 놓은 장소여서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자기 차례가 오면 줄무늬 목도리를 두르고 카트 손잡이를 잡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간다.
잘 만든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4억부 이상 팔렸다. 8편의 영화는 8조2000억원이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다.
빼어난 콘텐츠는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입소문이 난다.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발달하면서 상상을 스크린 속에 생생하게 옮기기도 쉬워졌다.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 등 이전에는 영화로 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한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둔다. 콘텐츠 창작자들은 제2의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을 꿈꾸며 독자와 관객을 잡아끄는 이야기를 꾸미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매혹적인 이야기는 어떻게 나올까. 조앤 롤링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한 카페에서 혼자 소설을 썼다. 하지만 1인 창작물이 대작이 되는 건 최근 콘텐츠 업계, 특히 드라마·영화 등 영상콘텐츠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성공방정식으로 통한다. 대신 주목받는 방식은 ‘협업’이다. 작가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홀로 밤을 새우는 대신 갖가지 주제로 열리는 워크숍에 참석한다.
미국 영화·드라마 시나리오 작가 모임인 동·서부 미국작가조합(WGA)은 ‘글렌 마자라가 말하는 안티히어로(영웅답지 않은 영웅)’, ‘조애너 존슨이 말하는 성소수자’ 등 다양한 세미나를 매주 빼곡하게 준비해 놓고 있다. 마자라는 좀비물인 ‘워킹데드’의 연출가, 존슨은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포스터즈’의 프로듀서 겸 작가다. 이런 자리에서 만난 중견·신인 제작자들과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평소 궁금했던 점을 나누는 대화에서 작품이 탄생한다.
잘나가는 로맨틱 코미디 작가였던 린다 옵스트도 할리우드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협업 시스템의 혜택을 봤다. 영화 ‘콘택트’ 제작 당시 만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통해 물리학자 킵손 박사를 소개받았고, ‘인터스텔라’를 함께 제작했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작법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자신의 내부에서 낯선 이야기가 기적적으로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대신 잘 알려진 이야기들의 서사 구조를 분석해 새로운 작품에 적용하는 것이다. 효시로 일컬어질 만한 작품은 ‘스타워즈’. 조지 루카스 감독은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길을 떠나는 영웅의 대서사시를 썼다.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자동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작은 단위로 쪼갠 사건을 레고 블록처럼 쌓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이야기 로봇’이 시중에 팔리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실제로 쓰이는 소프트웨어 ‘드라마티카’가 대표적이다.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는 롤플레잉 게임은 이야기 로봇의 초기 형태다. 매 순간 선택한 게임의 전개 내용을 모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최근 정부가 이야기를 산업적 측면에서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까지 이야기산업의 규모를 5조원으로 키우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창작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협업 세미나 개설 등 창작자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한다면 스타의 ‘반짝 인기’에 기대는 지금의 한류보다 의미 있는 문화 흐름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잘 만든 이야기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전 세계에서 4억부 이상 팔렸다. 8편의 영화는 8조2000억원이 넘는 흥행수익을 올렸다.
빼어난 콘텐츠는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로 입소문이 난다. 컴퓨터그래픽(CG) 기술이 발달하면서 상상을 스크린 속에 생생하게 옮기기도 쉬워졌다. ‘반지의 제왕’ ‘어벤져스’ 등 이전에는 영화로 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한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둔다. 콘텐츠 창작자들은 제2의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을 꿈꾸며 독자와 관객을 잡아끄는 이야기를 꾸미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매혹적인 이야기는 어떻게 나올까. 조앤 롤링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한 카페에서 혼자 소설을 썼다. 하지만 1인 창작물이 대작이 되는 건 최근 콘텐츠 업계, 특히 드라마·영화 등 영상콘텐츠 업계에서는 이례적인 성공방정식으로 통한다. 대신 주목받는 방식은 ‘협업’이다. 작가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홀로 밤을 새우는 대신 갖가지 주제로 열리는 워크숍에 참석한다.
미국 영화·드라마 시나리오 작가 모임인 동·서부 미국작가조합(WGA)은 ‘글렌 마자라가 말하는 안티히어로(영웅답지 않은 영웅)’, ‘조애너 존슨이 말하는 성소수자’ 등 다양한 세미나를 매주 빼곡하게 준비해 놓고 있다. 마자라는 좀비물인 ‘워킹데드’의 연출가, 존슨은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포스터즈’의 프로듀서 겸 작가다. 이런 자리에서 만난 중견·신인 제작자들과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평소 궁금했던 점을 나누는 대화에서 작품이 탄생한다.
잘나가는 로맨틱 코미디 작가였던 린다 옵스트도 할리우드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협업 시스템의 혜택을 봤다. 영화 ‘콘택트’ 제작 당시 만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통해 물리학자 킵손 박사를 소개받았고, ‘인터스텔라’를 함께 제작했다.
콘텐츠 업계에서는 작법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자신의 내부에서 낯선 이야기가 기적적으로 ‘탄생’하기를 기대하는 대신 잘 알려진 이야기들의 서사 구조를 분석해 새로운 작품에 적용하는 것이다. 효시로 일컬어질 만한 작품은 ‘스타워즈’. 조지 루카스 감독은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저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길을 떠나는 영웅의 대서사시를 썼다.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다면 자동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이다. 작은 단위로 쪼갠 사건을 레고 블록처럼 쌓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이야기 로봇’이 시중에 팔리고 있다. 할리우드에서 실제로 쓰이는 소프트웨어 ‘드라마티카’가 대표적이다. 주인공이 모험을 떠나는 롤플레잉 게임은 이야기 로봇의 초기 형태다. 매 순간 선택한 게임의 전개 내용을 모으면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최근 정부가 이야기를 산업적 측면에서 재조명하기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까지 이야기산업의 규모를 5조원으로 키우겠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창작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협업 세미나 개설 등 창작자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한다면 스타의 ‘반짝 인기’에 기대는 지금의 한류보다 의미 있는 문화 흐름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