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갑 에버랜드 사육사가 25년 동안 새끼 18마리를 낳은 기린 장순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뒤에 보이는 기린이 수컷 장다리.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김종갑 에버랜드 사육사가 25년 동안 새끼 18마리를 낳은 기린 장순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뒤에 보이는 기린이 수컷 장다리.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기린 두 마리를 자식처럼 키웠다. 남들은 “말도 안 통하는 기린 두 마리에 왜 그리 정을 쏟느냐”고 핀잔을 줬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볼 때마다 애틋했고, 사랑스러웠다. 기쁜 일이건 슬픈 일이건 세상에서 그의 얘기를 가장 묵묵히 들어준 건 이 기린 두 마리였다.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경기 용인 에버랜드에서 일하는 사육사 김종갑 씨(47) 얘기다.

지난 17일은 김씨에게 특별한 하루였다. 그가 동물 사육사가 된 1987년부터 올해까지 29년간 동고동락한 ‘기린 부부’인 장다리와 장순이의 결혼 25주년 기념 은혼식이 열려서다. 에버랜드의 동물원 로스트밸리에서 열린 이 행사에서 김씨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

장다리와 장순이는 보통 기린과 다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18마리를 출산한 ‘최다산(最多産) 기린 부부’다. 이들 부부의 새끼 18마리를 손수 다 받아낸 김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25년 전 부부의 연을 맺고 건강하게 살아준 이 녀석들이 정말 대견합니다. 장다리와 장순이는 수많은 방문객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둘 다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앞으로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준다면 더는 바랄 게 없습니다. 고맙다 얘들아.”

기린 대변 200개 세어보기도

어린 시절부터 동물은 그의 친구였다. 경북 상주 시골집에서 여러 가축을 키우며 동물들과 가까이 지냈다. ‘어른이 돼 직업을 갖는다면 꼭 동물과 관련한 일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김씨는 1987년 2월 김천생명과학고(옛 김천농업고)를 졸업하자마자 에버랜드(당시 자연농원) 동물원에 입사 지원서를 냈다. 동물에 대한 전문 지식은 부족하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크다는 점을 전달하려 애썼다. 결국 그의 진심은 통했다.

[人사이드 人터뷰] 장순이·코식이 등 스타동물 키워낸 김종갑 에버랜드 사육사
김씨는 “1987년 7월은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날”이라고 말했다. 이날은 김씨가 처음으로 동물원에 출근한 날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고, 그곳에서 기린 두 마리를 만났다. 바로 장다리와 장순이였다. 그는 “장다리와 장순이도 저와 같은 때 이 동물원에 왔다”며 “입사동기라고 생각하니 더 정이 갔다”고 말했다. 기린을 코앞에서 본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사육사가 돼 기뻤지만 결코 만만한 직업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집안에서 가축을 키우던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훨씬 전문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김씨는 동물들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 공부에 매진했다.

당시만 해도 동물 사육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았다. 김씨는 회사의 지원을 받아 미국, 일본 등 해외 동물원으로 출장을 다니며 동물을 연구했다. 먹이를 주는 방법부터 행동 양식까지 철저히 공부했다. 초보 사육사 시절에는 기린 대변 200개를 매일 세어보며 연구하기도 했다. 동물이 잠은 어떻게 자는지 궁금해 동물사 안에서 잠을 청한 적도 있다.

“여러 동물 중 특히 기린에 대해 많이 연구했어요. 장다리와 장순이가 계속 눈에 밟히더라고요.”

가족 같은 기린 두 마리

1986년생 동갑내기인 장다리와 장순이는 김씨를 유독 잘 따랐다. “장다리와 장순이가 두 살이 되던 무렵부터 함께했으니 가족이나 다름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씨는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7시쯤이면 동물원 문을 열고 들어선다. 장다리, 장순이를 포함해 그가 맡고 있는 동물들의 먹이를 챙겨주고 동물사를 깨끗이 청소하다보면 반나절이 간다.

장다리와 장순이가 부부가 된 것은 1989년 말. 두 기린이 처음 부부의 연을 맺던 날, 장다리가 장순이를 졸졸 따라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김씨는 활짝 웃었다. 1990년 9월 장순이가 첫 새끼를 낳던 날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고 했다. 보통 기린의 출산은 두세 시간 정도 걸리는데, 진통이 시작되고 다섯 시간이 되도록 새끼는 나오지 않았다. 김씨는 “긴장도, 걱정도 많이 했는데 고생 끝에 다섯 시간을 조금 넘겨 첫 새끼를 낳았다”며 “장순이와 새끼가 모두 건강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떠올렸다.

기린은 출산에 어려움을 겪는 동물이다. 그러나 장다리, 장순이 부부는 2013년까지 무려 18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장순이는 세계 동물 데이터베이스인 국제 종(種) 정보시스템에 ‘세계에서 가장 새끼를 많이 낳은 기린’으로 등재돼 있다. 출산 현장에는 늘 김씨가 있었다. 새벽에 출산하는 일도 많아 잠 한숨 못 자며 출산을 돕기도 했다. 김씨는 “장순이가 출산할 때마다 매번 기도했다”며 “특히 18번째 새끼를 낳던 순간에는 29년 사육사 생활에서 가장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장다리, 장순이 부부가 최다산 기린이 된 비결로 정반대의 성격을 꼽았다. 장다리는 거침이 없고 과감한 성격이어서 에버랜드에서 키우는 기린 12마리 중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가족을 이끌고 지켜낼 리더십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장순이는 조심스럽고 섬세한 편이어서 새끼를 돌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했다. 그는 “이런 점이 조화를 이뤄 건강하게 순산해온 게 아닐까”라며 껄껄 웃었다.

기린 아빠의 소원

김씨의 손길을 받은 동물의 수는 많지만 그의 별명은 ‘기린 아빠’다. 장다리, 장순이의 전담 사육사 역할을 하면서 동물원 내에서 김씨만큼 기린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현재 에버랜드에 살고 있는 기린 12마리는 모두 김씨가 관리한다. 그는 요즘 기린 12마리와 코끼리 3마리 등 총 15마리의 동물을 돌보고 있다. 로스트밸리에서 ‘말하는 코끼리’로 잘 알려진 코식이도 그가 돌보는 동물 중 하나다.

김씨의 소원은 동물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 이를 위해 후배 사육사들에게도 짬을 내 사육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그는 세 가지 노하우를 강조한다. 항상 관찰하고 관심을 두고 기록할 것. 늘 동물 입장에서 생각하고, 동물들의 행동을 궁금해할 것 등이다.

김씨는 “동물들은 말을 할 수 없으니 사육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동물들이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느냐는 사육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동물들에게 신선한 과일, 채소를 사료와 섞어 먹이는 김씨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김씨는 볼우물이 쏙 들어가도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동물들이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게 늘 곁에서 함께할 겁니다. 제 가족인 걸요.”

사육사의 세계

말 못하는 동물과 교감, 섬세한 관찰력은 필수!…면접이 당락 좌우해


사육사의 핵심 업무는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이 잘 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계속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가장 중요한 임무다. 마실 물과 먹이를 충분히 공급해주고, 질병 예방과 건강 관리도 맡는다.

사육사들은 보통 오전 6시30분에 출근해 동물들의 상태를 관찰하며 일과를 시작한다. 밤새 아프지는 않았는지, 피부에 이상이 있지는 않은지 건강상태를 꼼꼼히 확인한다. 사육장에 흩어진 동물들의 대소변을 치우고, 청결 관리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영양을 고려해 적정량의 먹이도 준다.

사육 외 업무도 많다. 방문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동물의 상태나 습성을 설명해주는 안내자 역할도 한다. 방문객들은 사육사를 통해 더욱 쉽고 재미있게 동물원을 둘러볼 수 있다.

국내에 있는 10여개 동물원에서 근무 중인 사육사 수는 400여명이다. 사육사가 되려면 일반 회사에 취업할 때와 마찬가지로 해당 동물원의 채용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대학에서 동물 관련 공부를 했으면 입사 때 우대를 받기도 하지만 비전공자도 지원할 수 있다. 사육사 취업에 필요한 관련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각 동물원은 기본 자질을 갖춘 사람을 뽑아 동물원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교육과정을 거쳐 전문 사육사로 키워낸다. 삼성물산이 운영하는 경기 용인 에버랜드 동물원에선 ‘EZEC(everland zookeeper educational course)’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활용해 전문 역량을 갖춘 사육사를 양성하고 있다.

정기 채용보다는 각 동물원의 여건에 따라 수시 채용을 하는 게 보통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사육사 채용 시험에선 면접이 당락을 좌우한다고 보면 된다”며 “사육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인 관찰력과 인내심을 갖고 있는지 꼭 살핀다”고 말했다.

사육사의 연봉은 근무지, 경력, 성과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개 입사 직후 3000만원대 초반의 초봉으로 시작해 연차, 성과에 따라 연봉 인상 폭이나 속도가 달라진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