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해마루촌 마을 전경.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해마루촌 마을 전경.
민간인통제구역으로 향하는 마지막 관문인 통일대교를 건너서도 한참을 더 들어갔다. 산으로 에워싸여 있는 작은 마을 하나가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마을 이름은 ‘해마루촌’이다. 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민간인출입통제선(이하 민통선) 안이다. 휴전선으로부터 남방 6.4km, 남방한계선 4.4km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지근거리에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마을이었지만 특별한 긴장감은 감지되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 마을, 그뿐이었다.
총성도 이제 익숙한 민통선 마을 '해마루촌'…불편해도 고향 못 떠나
1998년 실향민 마을로 조성돼

“마을이 조성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그냥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 마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조성호 해마루촌 이장은 해마루촌이 조성된 지 15년이 지났다고 말했다. 해마루촌은 기획 도시다. 파주시는 6·25전쟁 이후 원치 않는 유랑 생활을 하고 있는 장단군 고향 실향민 1세대 5000여 명과 원거리에서 출입하며 농사를 짓고 있는 2000여 명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1998년부터 정착촌을 만들기 시작했다.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887 일대 10만777㎡ 부지에 들어선 60가구 규모의 정착촌은 2000년 기반 조성을 완료하고 2001년 분양됐다. 당초에는 장단 지역 출신으로 민통선 안에 일정 면적 이상의 농지를 소유한 사람에게만 입주가 허락됐다. 입주 제한이 없어진 현재 해마루촌에는 71가구, 총 166명이 함께 살고 있다. 대부분은 부부 위주로 2~3명씩 살고 있다.

“군부대에서는 작전상 잠깐 나가 있으라고만 했다. 그 말을 믿고 금방 돌아올 것이란 생각에 숟가락 하나 챙기지 못하고 고향을 떠났다.” 마을 주민 이백형 씨는 1951년 11월 당시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민통선 내 장단 지역을 고향으로 둔 다른 주민들도 하나같이 똑같다. 남쪽의 경계 안에 터 잡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비무장지대(DMZ)와 민통선이라는 군사적 통제에 막혀 전쟁 이후 50여 년을 실향민으로 지내야 했다. 통일이 돼야만 고향을 찾을 수 있는 다른 실향민들과 해마루촌 주민들의 분명한 차이다. 해마루촌은 6·25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주민들이 50년 만에 되돌아온 고향이다. 입주 당시만 해도 해마루촌은 북한에 빼앗긴 땅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동파리 수복마을이라고 불렸다.
지뢰지대 표시판 앞에서 해마루촌 주민이 잡초를 뽑고 있다.
지뢰지대 표시판 앞에서 해마루촌 주민이 잡초를 뽑고 있다.
고령화 심각…관광 활성화 기대

9월 1일 평일 오전이어서 그런지 마을은 조용했다. 대부분이 밭에 나가 농사일을 하고 있다는 게 조 이장의 설명이다. 이따금 마주치는 주민들은 하나같이 고령이었다. “저분은 올해로 92세예요. 마을 자체가 1세대 실향민을 대상으로 조성된 만큼 고령자 비율이 높은 편이죠. 주말에만 마을을 찾는 사람을 제외하고 현재 145명이 마을에 실거주하고 있는데 이 중 90여 명이 65세 이상 고령자예요.” 이에 따라 대두되고 있는 고령화 문제는 해마루촌도 해결해야만 하는 숙제다. 관광·숙박업(민박) 등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젊은 주민들을 마을로 다시 끌어오겠다는 것이 해마루촌의 전략이다.

해마루촌에서는 20여 가구가 농사로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전체 주민 중 30%에 가까운 수치다. 이 밖에 시내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주민은 15가구(젊은층 중심), 주말에만 민통선에 들어와 농지를 관리하는 가구도 15가구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사 작물로는 콩의 인기가 높았다. 조 이장은 “해마루촌은 토지가 오염되지 않고 비옥해 콩 재배에 안정맞춤”이라며 “해마루촌에서 수확한 콩으로 만든 콩국수는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해마루촌표 콩국수의 맛을 본 결과 일반 콩국수에 비해 진하고 고소한 맛이 강했다.

조 이장은 또한 콩 농사의 비중이 높은 이유가 “콩이 다른 농작물보다 재배하기 쉽다는 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농사를 짓는 주민 대부분이 고령자라는 게 주요 원인이었다.
왼쪽부터 해마루촌 민방공 긴급대피소, 해마루촌 입구에 자리한 마을회관, 마을 회관서 진행하는 노래교실.
왼쪽부터 해마루촌 민방공 긴급대피소, 해마루촌 입구에 자리한 마을회관, 마을 회관서 진행하는 노래교실.
편의점도 없어…필요할 때마다 밖으로

그러면 농사 수익은 어느 정도일까. 일각에서는 높은 수익을 예상하는 사람도 많았다. 불편한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는 민통선 생활을 계속하는 데에는 그에 상응하는 수익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마루촌 주민들은 농사를 지어 큰 수익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조 이장의 말에 따르면 해마루촌 주민들은 평균 1만6525~3만3050㎡(5000~1만 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콩 농사 연평균 수익은 3.3㎡당 3000원꼴이란다. 그러면 3만3050㎡의 토지를 소유한 주민은 연 4000만 원의 수익을 얻게 되는데 여기서 농약 및 수확 비용 1500만 원을 제외하면 순수익은 2500만 원에 불과하다. 이는 농기구 등에 사용되는 전기료를 계산하지 않은 수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막상 손에 들어오는 돈은 월 200만 원도 채 안 된다. 부부 두 사람이 모두 매달려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해도 생활이 빠듯할 수밖에 없다며 푸념하는 조 이장이다. 해마루촌 주민 윤옥보 씨는 “겨울에 할 일을 찾아야만 하는데 관광객이 더 늘어나 콩국수 전문점 등 근린생활시설들이 마을에 추가로 조성되면 일거리가 많아질 수 있다”며 “이를 위한 해마루촌 부지 용도 변경(주거 용지→근린생활용지)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총성도 이제 익숙한 민통선 마을 '해마루촌'…불편해도 고향 못 떠나
현재 해마루촌의 생활 편의 시설은 식당(1개소)·교회(1개소)·마을회관(1개소)뿐이다. 병원과 학교도 없다. 대형 마트는 물론 그 흔한 편의점도 없다. 필요할 때마다 민통선 밖에 나갔다 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루촌 주민들은 불평불만이 없다. 밤낮없이 수시로 울려 퍼지는 총성 소리(사격 훈련 등에 따른)마저도 이제는 익숙하단다. 50년 만에 찾은 고향에서 욕심 없이 소박하게 살고 있는 해마루촌 주민들이다.

김병화 기자 kb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 BUSINESS 1032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