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탐정
금융회사를 파산시킨 주범들이 해외에 숨겨놓은 재산은 어떻게 찾아낼까. 최근 예금보험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현지 탐정들이었다. 예보가 부실책임자의 출입국 기록, 해외송금내역 조회 등을 통해 은닉정황을 찾아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해당지역 탐정들이 발로 뛰며 은닉자산을 샅샅이 찾아냈다는 것이다.

탐정이라고 하면 흔히 사냥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물고 있는 셜록 홈즈를 떠올리게 된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홈즈와 더불어 ‘세계3대 탐정’이라고 불리는 오귀스트 뒤팽, 에르퀼 푸아로의 이름도 기억할 것이다. 이들은 각각 아서 코넌 도일, 에드거 앨런 포, 애거사 크리스티가 창조한 주인공들이다. 독특한 캐릭터의 이 명탐정들은 주로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다룬다. 그리고 명석한 추리력과 놀라운 예지력으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탐정이 하는 일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의뢰받은 자료를 조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공식 명칭은 민간조사원(private investigator)이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직업은 수요가 있어서 생긴다. 탐정이라는 직업이 없었으면 예보가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은닉재산을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했거나 엄청난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국내에서 탐정업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것도 같은 논리다. 그러나 10여년간 논의만 무성했을 뿐 아직까지 관련법이 통과되지 못해 탐정 관련 서비스가 전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는 실종가족을 찾는 것을 누군가 대행한다면 불법이다.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신용조사업자의 신용정보조사 외에는 누구든지 특정인의 소재 등을 탐지하는 것이 금지돼 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민간조사업이 불법인 나라는 한국뿐이다. 미국과 일본에는 각각 6만명, 독일과 영국 등엔 각기 2만명의 탐정이 활동 중이다. 실종자나 가출인, 도난 혹은 분실 물건 등에 관한 조사를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 어차피 경찰 등 공권력이 다 해주지 못하는 영역이라면 민간의 몫으로 돌려놓는 것이 옳다. 보험사기, 지식재산권 보호, 산업스파이 조사 등이 모두 그런 분야다.

정부 역시 지난해 사립탐정을 신직업으로 육성, 지원하겠다는 발표까지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입법화는 요원하다. 이 역시 “부자만 좋아질 것”이라는 타령 한마디에 오리무중이 되고 말았다. 정부 발표만 믿고 탐정을 꿈꾸던 이들은 헛물만 켠 꼴이 됐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