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아이패드 화가 정병길 화백, “아이패드로 누구나 쉽게 유화 그릴 수 있죠”
“그림은 일부 특수계층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에요. 특히 아이패드를 잘 활용하면 누구나 손쉽게 유화를 그려낼 수 있죠.”

지난 9월 12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아이패드 화가’ 정병길 화백(63)은 “아이패드 그림은 간편하고 저렴하게 고품질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각광받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화백은 11~12일 이틀간 서울광장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서울시의 주최로 열린 ‘서울 앱 페스티벌’에서 ‘즐거운 그림마을’ 부스를 운영하며 시민들을 만났다.

이날 정 화백이 선보인 아이패드 그림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는 “삼성전자의 한 직원이 찾아와 특별히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는지 묻더니 삼성의 테블릿PC를 제공하고 강연 등에 강사로 초빙하고 싶다고 제안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지난해 6월 경기 고양시에서 국내 최초로 아이패드 그림 개인전을 열은 정 화백의 원래 직업은 화가가 아닌 은행원이었다. 30여년간 농협에서 근무하며 지점장 등을 역임한 후 2010년 퇴직했다.

퇴직 후에는 의미 있는 ‘은퇴 이후’를 살겠다는 평소 소신에 따라 집필과 그림 그리기에 매진했다. 2011년 ‘내 아이 이웃과 더 큰 세상으로(휘닉스)’를 시작으로 2013년 ‘이젠 아빠를 부탁해(비움과채움)’ 등 두 권의 책도 펴냈다.

아이패드 그림과의 만남은 다소 우연이었다. “2013년 책 홍보방안을 고민하며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홍보를 위해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에게 찾아가 페이스북과 유튜브 활용법을 배우던 중 아이패드 그립앱의 존재를 알게 됐다”고 정 화백은 설명했다.

그림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미술부 활동을 했고, 직장을 다니면서도 꾸준히 그림을 그려 여러 차례 대회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는 정 화백은 아이패드 그림이 자신에게 딱 맞는 옷이라고 느꼈다. 컴퓨터(PC)를 이용한 그림이 마우스의 부자연스러운 동작 등으로 한계가 있음에 비해 아이패드는 손가락 터치만으로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도 정 화백을 사로잡았다.

그는 “한국의 경제수준이 많이 높아진 만큼 앞으로 유럽처럼 문화예술이 융성하면 그림에 대한 수요도 커질 것이란 점에서 아이패드 그림이 상당히 유망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빠르게 아이패드 그림앱 사용법을 익힌 정 화백은 지난해 6월 고양시 강강술래 늘봄농원식당에서 국내 최초로 아이패드 그림 개인전을 열었다. 지금까지 개인전 7회, 그룹전 1회를 진행했다. 지난해에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주최한 ‘2014 시니어 IT일자리 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정 화백이 꼽는 아이패드 그림의 장점은 ‘간편함’이다. 그는 “만약 제가 제주도에 가서 유화를 그리려면 물감과 캔버스, 이젤 등 도구 한 짐을 메고 가야한다”며 “유화 물감은 인화성이 있어 공항 검색대를 통화하기 쉽지 않은데다, 유화 기름은 아예 비행기에 싣지도 못해 현지 화방에서 구입하고 남은 건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면 아이패드 그림은 아이패드와 터치펜만 구비하면 돼 휴대가 간편하고 책이나 티셔츠 등 다양한 소재에 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아이패드 그림은 가격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고 정 화백은 지적했다. 그는 “보통 유화는 아무리 무명 화가라도 원가 등을 고려하면 100만원이 훌쩍 넘지만 아이패드는 상당히 저렴한 20~30만원선에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아이패드 그림이 단체 모임 행사 상품이나 골프대회 등의 우승상품 용도로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 화백의 설명이다.

정 화백은 “문화융성은 김연아나 싸이 같은 엘리트 문화예술인들의 힘만으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며 “시민 개개인이 생활 속에서 서툴게 그린 그림을 자기 집에 걸어보는 등 생활 속에서 문화예술이 살아 숨쉬어야 진정 풍요로운 문화융성시대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