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미술은 일상의 소망에서 출발했고, 그림은 문자의 역할을 대신했다. 화가 파블로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이 아프리카 미술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들어 아프리카 사람들이 즐겨 쓰는 장신구를 비롯해 의상, 문신 등이 현대 패션의 영양분이 되고 있다. 서양화의 영향을 받은 아프리카 작가들의 그림은 신선함과 창의성을 인정받아 세계 미술계에서 ‘블루칩’으로 떠오르고 있다.

아프리카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살펴볼 수 있는 이색 전시회가 마련됐다. 한국경제신문 창간 51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오는 23일까지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서 열리는 ‘아프리카 현대미술전’이다.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탄자니아 화가 헨드릭 릴랑가의 ‘치과의사’.
서울 중림동 한경갤러리에 전시된 탄자니아 화가 헨드릭 릴랑가의 ‘치과의사’.
‘블랙 매직(Black magic)’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탄자니아 ‘국민화가’ 팅가팅가와 헨드릭 릴랑가를 비롯해 두츠, 케베, 아산닝(세네갈) 카툰(케냐) 아마르(수단) 칸킨다(콩고) 등 아프리카 인기 화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이들은 아프리카의 힘찬 에너지와 새로운 꿈의 동력을 서사적인 내용과 저항적인 감성으로 표현한 작품 30여점을 걸었다.

작가들은 원시적 에너지를 굴곡진 역사에 접목해 아프리카의 꿈을 화면에 쏟아냈다. 고대 암각화의 원시동물을 현대적인 만화기법으로 풀어내는 팅가팅가(56)는 콩고의 어지러운 현실을 호랑이와 표범 등 야생 동물의 표정에 담아냈다. 강렬한 원색과 간결한 선으로 묘사한 동물들의 눈빛에서는 궁지에 몰렸을 때 내뿜는 독기 같은 게 느껴진다.

팝아트로 유명한 헨드릭 릴랑가(41)는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의 움직임을 현란한 색감으로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작품을 걸었다.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전통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작품을 통해 아프리카의 정신세계를 풀어냈다.

2001년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설치미술로 유럽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두츠(43)는 급변하는 아프리카의 현실을 시적으로 들춰냈다. 가난한 달동네 풍경과 더불어 자동차와 빌딩이 혼재하는 그의 화면에서는 원시와 현대가 공존하는 ‘검은 대륙’을 읽을 수 있다.

고갱이나 마티스처럼 독특한 색감을 통해 독창적인 화풍을 구축한 케베(61)는 흰색과 검은색을 대비해 주로 목이 긴 사람과 꽃을 든 사람들을 그린 근작을 내놓았다. 긴 목과 꽃을 통해 개성을 중시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의 심리를 반영하는 동시에 하늘에 가까워지고 싶은 종교적 욕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화려한 색으로 동물을 그려 아프리카 역사를 강렬하게 담아낸 고두프레이, 일상의 소망을 색채와 문자로 풀어낸 아사닝, 추수감사절을 즐기는 사람들을 기하학적으로 묘사한 칸킨다,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을 캐릭터처럼 그린 아마르, 사람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네 개씩만 그려 인간의 부족함을 일깨우고 ‘아프리카의 톨레랑스(관용)’를 화폭에 옮긴 주베리 등도 아프리카의 역동성과 소외감을 동시에 보여준다.

정해광 아프리카미술관장은 “성전이나 율법으로 인간을 가두지 않고 순백의 심성으로 아프리카를 표현한 작품을 보면 삶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02)360-4232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