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머니, 내 유년의 윗목
추석을 지나 날씨가 제법 서늘하고 소슬해졌다. 필자는 이런 가을날이면 소프라노 신영옥 씨가 부른 동요 ‘가을밤’을 추천한다. 그가 방송이나 콘서트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자주 부르는 노래다.

신씨가 부른 ‘가을밤’은 아이에게 노래를 불러 주는 잔잔한 엄마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중반부터 아름답고 서정적인 신씨의 목소리가 애잔하게 심금을 울린다. 이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필자 또한 어머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은 각별할 것이다. 어머니의 품에서만큼은 각박한 세상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따뜻하고 포근히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신협 신입 직원 부모님 초청행사를 열었다. 새내기 직원들은 저마다 부모님께 보내는 동영상 편지에 그간의 은혜에 감사를 전하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다. 그날 많은 직원 중 유독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며 눈물을 흘리는 신입 직원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필자 또한 오래전 어머니와의 옛 추억이 떠올라 덩달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필자의 어머니께서 어떻게 사셨는지는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을 읽으면 떠올릴 수 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그랬다. 세상의 전부와도 같았던 어머니의 부재는 무척 두려웠다. 비록 오래된 일이라 희미해지긴 했지만 어릴 때 어머니가 오시길 기다리는 그 기나긴 시간은 마치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아 무서웠다. 그 아련한 기억 속의 어머니를 홀로 불러 보는 아들은 이제 60대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서늘한 유년의 윗목에 머물고 있다.

단풍이 붉게 물들어갈 가을날, 부모님의 손을 잡고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가로수길을 함께 거닐어보는 건 어떨까. 켜켜이 쌓여가는 낙엽처럼,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자 인생의 따사로운 아랫목이 돼줄 것이다.

문철상 < 신협중앙회장 mcs@c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