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덴마크 플렉시큐리티, 노동개혁의 이상형
한국 경제의 저(低)성장 기조가 장기화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연 7~10% 정도 성장하며 ‘한강의 기적’을 이뤘으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외환위기를 맞으며 성장률은 4~5%대로 떨어졌고 2000년대 이후에는 3~4%대에 머물고 있다. 올해 성장률은 2%대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문제는 인구 고령화로 경제가 활력을 잃어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대부분 기업의 직원 평균연령은 40대이고 역사가 오래된 기업들은 평균 48~49세로 평균연령 50세를 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인구가 5000만명이 넘고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달하는 ‘5030클럽’ 국가는 6개뿐이며 한국이 일곱 번째 국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급격한 인구 감소, 고령화와 저성장 여파로 지금이 한국 경제와 국력의 정점이며 이제부터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경제의 원동력인 기업들이 고령화·저성장 시대에 잘 대처하지 못하면 남미와 남유럽 국가들에서 보듯 국민소득 3만달러 벽을 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저성장시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혁신을 통한 새로운 시장개척과 상시 사업조정을 통한 수익구조 개선이 중요하다. 인적 자원의 경쟁력 제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기업은 사람이 모인 집단이며 인적 자원의 경쟁력이 곧 기업의 경쟁력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인적 자원 경쟁력 제고 방안으로는 핵심인재의 확보 및 육성, 정확한 평가와 보상, 효과적 인력신진대사 등이 긴요하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정년 60세 연장으로 조직의 고령화가 급속히 이뤄질 전망이어서 특히 기업의 합리적 인력신진대사의 실현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인력신진대사의 활성화는 일자리 확충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인력의 자유로운 신진대사를 가로막는 한국 노동시장의 문제는 내부 노동시장은 발달한 반면 외부 노동시장은 지극히 미성숙됐다는 점이다. 즉, 한 기업에서 그만둔 중견 직원이 다른 기업으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서 대부분의 직원은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것을 극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중견 사원을 채용하는 기업이 늘고 일부 산업에서는 이직도 잦아지고 있으나, 기업 간 인력의 자유로운 교류는 여전히 예외적인 현상일 뿐이다. 평상시 합리적인 인력신진대사는 인적 자원 활용의 유연화를 통한 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정리해고나 더 큰 고용위기의 예방책이기도 하며, 기업 간 이동을 보장하므로 근로자의 고용안정을 위한 근본적 대안이기도 하다.

노·사·정이 진행 중인 노동개혁 논의에서 장기적인 이상형으로 삼아야 할 국가로 덴마크를 꼽는 학자가 많다. 1990년대부터 기업 간 이동, 재훈련, 재취업이 자유로운 덴마크의 노동시장 모델이 ‘유연한 안정(flexsecurity)’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본받아야 할 노동시장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이 모델은 한 직장에서의 ‘고용안정성’ 대신 노동시장 전체에서의 ‘고용가능성’을 제공하는 점이 특징이다. 근로자들의 기업 간 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적극적인 재훈련, 퇴직지원을 통해 개개인의 고용가능성을 높여 사회 전체적으로 고용률은 높게, 실업률은 낮게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의 성공사례를 보면 한국의 노동정책은 큰 청사진 없이 늘 대증요법에 매달려 온 느낌이다. 외부 노동시장의 점진적 발달을 통한 근로자들의 고용가능성 증대를 장기적인 목표로 삼는 것이 고령화와 저성장 시대를 맞은 우리의 고용문제를 해결해줄 가장 근본적인 대안이 아닐까.

김동원 < 고려대 경영대학장 겸 경영전문대학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