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1일 오전 11시13분

[마켓인사이트] "다중청약제, 기관에만 유리"…개인투자자들 불만 커진다
28.59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현대상선 신주인수권부사채(BW) 청약에 메리츠종합금융증권이 전체 BW 발행액(1500억원)의 3.6배에 달하는 5500억원을 청약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나 증권가에 논란이 일고 있다. 다중청약(물량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기 위해 여러 증권사에 동시에 청약하는 것)에 금액 한도 제한이 없다는 점을 활용해 지나치게 많은 물량을 청약했다는 지적이다. 자금력을 앞세운 기관투자가가 청약 때 물량 공세에 나서면 개인투자자의 투자 기회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5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달 7~8일 실시된 현대상선 BW 청약 때 7개 인수단 중 유진투자증권 등 4곳에 1000억~1500억원씩 모두 5500억원을 청약했다. 메리츠증권은 다중청약을 통해 현대상선 BW 192억원어치를 배정받았을 것으로 IB업계는 추정했다. 전체 발행액의 12.8%에 이르는 물량이다.

메리츠증권의 대규모 청약으로 경쟁률이 치솟으면서 개인투자자와 다른 기관투자가들은 피해를 봤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현대상선 BW에 1억원을 청약한 개인투자자는 350만원 안팎의 BW를 받을 수 있었다.

현대상선 BW 청약에 몰린 자금은 4조3000억원에 달했다. 채권과 신주인수권(워런트)이 분리되는 ‘분리형’이어서 인기가 높았다. BW 1만원어치를 배정받은 투자자는 만기에 연 7%를 주는 액면 1만원짜리 채권과 신주를 5000원에 살 수 있는 신주인수권 2개를 받았다. 청약일 즈음 현대상선 주가는 7000원을 웃돌았다. 이에 따라 이 BW를 배정받아 상장 첫날 시초가에 채권과 신주인수권을 매각한 투자자는 한 달도 안 되는 기간에 12%의 높은 수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주식이나 회사채, BW 등 증권의 공모 및 청약 방법은 현재 발행기업 자율에 맡겨져 있다. 다중청약은 일반 주식이나 회사채 발행 때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BW 등 주식연계채권(ELB) 공모 정도 때만 청약 흥행 등을 위해 선택적으로 사용돼왔다. BW는 2013년부터 분리형 발행이 전면 금지되면서 발행이 사실상 중단됐다가 올 7월 말 공모 방식에 한해 분리형 발행이 허용되자 이번에 현대상선이 처음으로 다중청약 방식으로 공모에 나선 것이다.

한 중형 증권사 IB 부서장은 “분리형 BW 발행이 재개된 만큼 이번 기회에 다중청약제도의 문제점을 살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열/이유정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