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춘의 데스크 시각] 폭스바겐 CEO는 왕따였다?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이 ‘미국 음모론’을 제기했다. “미국이 폭스바겐에 대해 강경하게 나오는 것은 유럽 자동차업계를 견제하고 자국 자동차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미국 음모론은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 사건이 터진 지난달 18일부터 나돌았다. 세계 1위로 올라선 폭스바겐을 한방에 보내려는 미국의 술책이라는 게 골자다. 2008년 세계 1위가 된 도요타가 미국 정부의 대규모 리콜명령으로 휘청거렸던 사례가 곁들여지며 제법 그럴듯했다. 하지만 아니다. 폭스바겐 스캔들은 도요타 리콜과는 분명 다르다. 폭스바겐 스스로 6년에 걸쳐 1100만여대의 배기가스를 조작했다고 시인했으니 명백한 사기극이라고 보는 게 맞다.

‘미국 음모론’은 틀렸다

음모론 얘기가 나왔으니 폭스바겐 스캔들을 음모론적 시각으로 한 번 살펴보자. 가장 그럴듯한 음모론은 ‘엔지니어 음모론’이다. 폭스바겐은 ‘클린 디젤’을 내세워 유럽시장을 장악했다. 미국시장만 잡으면 세계 평정은 일도 아닌듯 싶었다. 미국이 배기가스 배출 기준을 갈수록 강화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독일이 자랑하는 엔지니어들은 죽을 힘을 다해 클린 디젤을 개발했다. 하지만 웬걸. 미국 기준엔 못 미쳤다.

이들은 다급해졌다. 연구개발비는 바닥났다. 주어진 시간도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실패를 자인하자니, 질책이 두려웠다. 외통수에 몰린 엔지니어들이 배기가스 조작이라는 꼼수를 사용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음모론은 ‘폭압적 지배구조 음모론’이다. 폭스바겐 창업자는 포르쉐를 세운 페르디난트 포르셰다. 그의 손자들이 장성한 뒤 지배구조가 뒤틀렸다. 친손자인 볼프강 포르셰와 외손자인 페르디난트 피에히는 한바탕 적대적 인수합병(M&A) 경쟁을 벌였다. 여기서 승리한 피에히 회장은 12개의 자동차 브랜드를 거느린 폭스바겐그룹을 건설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포르셰는 마르틴 빈터코른 전 폭스바겐 회장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피에히를 회장직에서 몰아내 버렸다. 이 과정에서 줄세우기가 횡행했고, 수단 방법을 따지지 않는 실적 우선주의가 일반화됐다고 한다. 전문가들로부터 배기가스 조작 가능성에 대한 경고가 나왔지만, 보기좋게 묵살된 것도 이런 폭압적 지배구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당신은 왕따당하고 있지 않은가

어떤 게 진실인지는 모른다. 당국의 조사가 끝나봐야 안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 사태로 물러난 빈터코른 전 회장이 자신은 조작 사실을 몰랐다고 부인했다는 점이다. 6년이 넘게 이뤄진 조작 사실을 최고경영자(CEO)가 몰랐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거짓말을 했거나, 왕따를 당했던 게 틀림없다.

빈터코른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일부 전문가는 조심스럽게 왕따론에 무게를 둔다. CEO들은 속성상 모든 걸 잘하기 원한다.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성과는 최대화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정도 경영을 강조한다. 직원들로선 이율배반적이다. 막다른 길에 몰리면 CEO만 모르는 방법을 동원할 수 있다. CEO는 그저 성과만 보고 만족한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집단 왕따를 당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혹시 당신은 직원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채 눈에 보이는 성과에만 만족하고 있지나 않으신지.

하영춘 산업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