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원스’.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원스’.
“후버(Hoover·청소기 상표명)? 뭘 후벼요?”

지난 4일 서울 잠실동 샤롯데씨어터. 뮤지컬 ‘원스’ 오리지널 내한공연에서 이 자막이 뜨자 객석 이곳저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청소기 수리공인 ‘가이’가 자신의 직업을 ‘후버 고치는 일’이라고 말하자 체코 이민자인 ‘걸’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장면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것이다. 원문은 “What is Hoover(후버가 뭔가요)?”였지만 뉘앙스를 살리기 위해 번역가가 한국식 ‘말장난’을 가미했다.

해외 뮤지컬이 대거 국내에 들어오면서 공연의 ‘맛’을 살리는 번역가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한국어로 공연하는 라이선스 뮤지컬에선 한국어 대사를 통해, 오리지널 내한공연에선 자막으로 원작의 의미를 국내 정서에 맞게 전달하는 번역이 공연의 재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원스’ ‘애비뉴Q’ ‘킹키부츠’ 등을 번역한 김수빈 씨(28)는 톡톡 튀는 번역으로 작품마다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는 언어유희를 통해 작품의 코미디 요소를 살리는 데 집중했다. ‘원스’에 나오는 술집 주인 빌리의 대사 “우리 가게가 금전적인 상황은 좋지 않지만, 음식은 잘 챙겨먹고 다니거든”은 “막대한 영업 손실을 막대한 영양으로 보충하려고 한다”로 바꿨다. 김씨는 “영어를 잘 못하는 체코 이민자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번역에 더 신경 썼다”며 “어떻게 번역하느냐에 따라 배우의 캐릭터가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인 더 하이츠’는 스트리트 댄스, 랩 등이 등장하는 힙합뮤지컬이다. 제작사인 SM C&C는 미국 브로드웨이 공연의 정서와 느낌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특별히 랩 디렉터를 고용했다. 번역본을 다시 윤색해 배우들의 입에 맞는 랩을 만들기 위해서다. 랩 디렉터 나무(33·김재환)는 힙합의 플로(flow·음의 높낮이)와 라임(rhyme·운율), 펀치라인(punchline·언어유희)을 살리는 작업을 맡았다. 번역 과정에서 원문 랩이 가진 플로와 라임이 파괴되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원곡의 플로와 가사 내용을 익힌 뒤 한글로 랩을 다시 쓰는 과정을 거쳤다. 직역하면 ‘어쩌면 우린 무력한지도 몰라, 외국인이 가득한 구역, 이 동네는 영원히 변해 갈지도 몰라’인 문장은 라임을 살려 이렇게 바뀌었다. ‘네 말이 맞을 수도 있어, 우린 무력한 외국인, 어딜 가도 무시받고 차별받던 이방인.’

그는 “랩이 곧 뮤지컬 가사인 만큼 한번 들으면 바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라임과 펀치라인을 사용했다”며 “배우마다 랩을 소화하는 방식이 모두 달라 함께 작업하면서 각자의 특성에 맞추는 과정도 거쳤다”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