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지지부진…'좀비기업'만 양산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것은 조선업종만이 아니다. 건설 운송 등 거의 모든 업종에서 구조조정이 미뤄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재무상태로만 보면 팔리거나 퇴출돼야 마땅한 기업이지만, 금융회사 지원으로 근근이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좀비기업 증가는 결국 금융회사나 거래 기업에 더 큰 피해를 준다는 점에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내 외부감사대상 기업 1만 5000여개 중 최근 3년간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도는 기업은 2000여개다. 이자보상배율이 1이 안 된다는 것은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보다 빚을 진 은행에 이자로 지급한 돈이 더 많다는 의미다. 외부감사대상 기업의 13%는 자생력이 없는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들 기업은 멀쩡히 살아 있다. 정부나 금융회사 지원 덕분이다. 외부 지원이 끊기면 살 수 없는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을 흔히 ‘좀비기업’이라고 부른다. 좀비기업 자산은 외부감사대상 기업 전체 자산의 14.6%(2013년)에 이른다는 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이다. 2010년(13%)에 비해 1.6%포인트 높아졌다. 좀비기업을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이 41%로 가장 많다. 조선업 등 운송장비업도 전체의 26%에 이른다.

좀비기업이 늘어난 것은 구조조정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 시 경제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해 차일피일 미룬 탓”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기업이 있는 지역 경제에 대한 영향, 기업 종사자의 고용 문제 등을 우려해 살아날 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연명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출을 회수할 경우 실적이 나빠지는 것을 우려해 대출 만기를 연장했던 은행권의 보신주의도 좀비기업 양산에 한몫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미뤄지면서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망한 신생 중소·벤처기업에 지원해야 할 자금이 좀비기업으로 흘러가 자원 배분의 효율성이 뚝 떨어진다. 정상 기업의 고용과 투자를 떨어뜨린다는 분석(KDI)도 있다.

정대희 KDI 연구위원은 “1990년대 거품 붕괴 이후 일본이 부실기업에 대규모 금융지원을 함으로써 좀비기업 퇴출을 지연시켰다”며 “그 결과 일본의 장기 침체가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다”고 말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미뤄선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 이자보상배율

기업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를 얼마나 갚을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 영업이익을 지급이자 비용으로 나눠 계산한다. 이 배율이 1 미만이면 갚아야 할 이자보다 벌어들인 영업이익이 더 적다는 뜻이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