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중국의 도전, 독일의 부상, 미국의 대응…세계 경제패권 '힘겨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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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충돌
장미셸 카트르푸앵 지음 / 김수진 옮김 / 미래의창 / 336쪽 / 1만5000원
장미셸 카트르푸앵 지음 / 김수진 옮김 / 미래의창 / 336쪽 / 1만5000원
미국 일본 호주 등 12개국은 지난 5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타결했다. 지난달 30일부터 엿새간 진행한 마라톤 협상 끝에 얻은 결과다.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TPP에 반대하는 등 논란이 지속되는 가운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미 다음 스텝을 밟고 있다. 의회 비준을 위해 직접 비즈니스 리더들을 만나며 ‘세일즈’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 패권국으로 우뚝 서려는 미국의 재빠른 움직임이다.
프랑스 경제지 ‘르 누벨 에코노미스트’ 편집장을 지낸 언론인 장미셸 카트르푸앵은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열기 위해 경제 분야에서 취하고 있는 미국의 전략을 이렇게 분석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중국에 대립각을 세우는 국가들을 모은다. 동쪽으로는 미국 시장을 미끼로 독일 기업들에 손을 내민다. 다만 미국에서 물건을 파는 것뿐 아니라 생산까지 하라고 부추긴다.’
카트르푸앵은 《제국의 충돌》에서 “21세기 세계경제 체제는 미국과 중국, 독일 이 세 제국을 중심으로 편성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성장 경쟁’을 벌여온 중국과 독일의 현 상태와 전략을 집중 분석한다. 중국과 독일의 공통점은 양국 모두 수출 비중이 크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며 자국 통화를 강화하는 통화정책을 시행해 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위상에 도전하는 반면 독일은 미국과의 갈등 관계는 피하면서 유럽 대륙 맹주로서의 입지만 다지고 있다. 여기서 두 나라를 대하는 미국의 전략에 차이가 생겨났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미국과 중국이 주요 2개국(G2)이 되는 ‘차이나메리카’ 세상을 미국인들이 꿈꾼 것은 ‘월트디즈니 영화’처럼 순진한 발상이었다”고 지적한다. 중국이 서서히 미국식 경제·정치·사회모델을 받아들여 ‘시장’으로서만 기능할 것으로 예측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2050년 중국을 세계 혁신 리더로 부상시키겠다는 ‘중장기 국가과학기술개발계획’을 수립했다. 1인자가 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명료한 시나리오를 좇아 행동하고 있다. △외국 기업의 재화를 단순 생산하다가 △기술을 습득해 중국 현지 소비자를 위한 제품을 만들고 △수출을 하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등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갖춰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해외 기업에 유연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파괴적 가격을 앞세워 경쟁기업을 제거한다. 정보기술(IT), 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이 취하고 있는 전략이다. 엔터테인먼트, 와이너리, 관광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중국의 해외투자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권은 사회주의 정치색을 잃지 않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저자는 “선전 등에서 그랬듯 서구식 자유주의를 실험할 수 있는 지역을 조성하는 모델을 앞으로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자본주의는 곧 불평등의 증가”라고 중국 정부가 주장해온 만큼 100% 자유화되지는 않겠지만 중국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개방해 나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야욕을 숨기지 않는 중국과 달리 독일의 지향점은 ‘회계사의 탈을 쓴 패권국’이다. 정치·군사적 지배욕이 없음을 분명히 하는 대신 중상주의 정책을 통해 유럽에서 경제대국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저자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의 에세이 ‘독일식 유럽에 반대하다’를 인용해 “독일은 다양한 형태로 ‘노(NO)’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전쟁의 논리가 아닌 경제 붕괴에 대한 위기감을 이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 사태에서도 독일은 군사적 지배가 아니라 ‘부채’를 통해 상대국을 통제했다.
독일이 통일되면 ‘독일을 유럽에 잡아두는 효과는 생기지 않고, 유럽이 독일에 종속될 것’이라고 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예견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남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한 독일의 긴축 강요는 유로존 국가들로부터 ‘앉아 있는 벤치를 톱으로 자른다’는 비판을 사고 있지만 이미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린 독일에는 큰 타격이 없다. 2007년 독일이 기록한 연간 흑자 2000억유로 가운데 35%만이 유로존에서 나왔다. 나머지 30%는 유로존 이외 유럽 지역, 35%는 비유럽 국가를 상대로 나온 것이었다.
저자는 세계 열강의 세력다툼 속에 프랑스가 낄 자리가 없음을 한탄한다. 오늘날의 프랑스는 포퓰리즘에 빠져 공공부문 지출이 크게 증가했고, 세금 인상 정책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로 인해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를 동력으로 하는 3차 산업혁명(저자는 이를 IT와 경제의 합성어인 ‘I경제’라고 부른다)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해야 한다. 미국·독일·중국 3국 출신이 아닌 프랑스 출신 언론인이 중립적 시각으로 본 열강의 세력다툼 해석이 흥미롭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프랑스 경제지 ‘르 누벨 에코노미스트’ 편집장을 지낸 언론인 장미셸 카트르푸앵은 새로운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열기 위해 경제 분야에서 취하고 있는 미국의 전략을 이렇게 분석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중국에 대립각을 세우는 국가들을 모은다. 동쪽으로는 미국 시장을 미끼로 독일 기업들에 손을 내민다. 다만 미국에서 물건을 파는 것뿐 아니라 생산까지 하라고 부추긴다.’
카트르푸앵은 《제국의 충돌》에서 “21세기 세계경제 체제는 미국과 중국, 독일 이 세 제국을 중심으로 편성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성장 경쟁’을 벌여온 중국과 독일의 현 상태와 전략을 집중 분석한다. 중국과 독일의 공통점은 양국 모두 수출 비중이 크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하며 자국 통화를 강화하는 통화정책을 시행해 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위상에 도전하는 반면 독일은 미국과의 갈등 관계는 피하면서 유럽 대륙 맹주로서의 입지만 다지고 있다. 여기서 두 나라를 대하는 미국의 전략에 차이가 생겨났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미국과 중국이 주요 2개국(G2)이 되는 ‘차이나메리카’ 세상을 미국인들이 꿈꾼 것은 ‘월트디즈니 영화’처럼 순진한 발상이었다”고 지적한다. 중국이 서서히 미국식 경제·정치·사회모델을 받아들여 ‘시장’으로서만 기능할 것으로 예측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2050년 중국을 세계 혁신 리더로 부상시키겠다는 ‘중장기 국가과학기술개발계획’을 수립했다. 1인자가 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중국 기업들은 명료한 시나리오를 좇아 행동하고 있다. △외국 기업의 재화를 단순 생산하다가 △기술을 습득해 중국 현지 소비자를 위한 제품을 만들고 △수출을 하고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등 글로벌 기업의 면모를 갖춰 세계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해외 기업에 유연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곧 파괴적 가격을 앞세워 경쟁기업을 제거한다. 정보기술(IT), 자동차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이 취하고 있는 전략이다. 엔터테인먼트, 와이너리, 관광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중국의 해외투자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권은 사회주의 정치색을 잃지 않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저자는 “선전 등에서 그랬듯 서구식 자유주의를 실험할 수 있는 지역을 조성하는 모델을 앞으로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자본주의는 곧 불평등의 증가”라고 중국 정부가 주장해온 만큼 100% 자유화되지는 않겠지만 중국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개방해 나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야욕을 숨기지 않는 중국과 달리 독일의 지향점은 ‘회계사의 탈을 쓴 패권국’이다. 정치·군사적 지배욕이 없음을 분명히 하는 대신 중상주의 정책을 통해 유럽에서 경제대국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저자는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의 에세이 ‘독일식 유럽에 반대하다’를 인용해 “독일은 다양한 형태로 ‘노(NO)’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전쟁의 논리가 아닌 경제 붕괴에 대한 위기감을 이용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 사태에서도 독일은 군사적 지배가 아니라 ‘부채’를 통해 상대국을 통제했다.
독일이 통일되면 ‘독일을 유럽에 잡아두는 효과는 생기지 않고, 유럽이 독일에 종속될 것’이라고 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예견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남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한 독일의 긴축 강요는 유로존 국가들로부터 ‘앉아 있는 벤치를 톱으로 자른다’는 비판을 사고 있지만 이미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린 독일에는 큰 타격이 없다. 2007년 독일이 기록한 연간 흑자 2000억유로 가운데 35%만이 유로존에서 나왔다. 나머지 30%는 유로존 이외 유럽 지역, 35%는 비유럽 국가를 상대로 나온 것이었다.
저자는 세계 열강의 세력다툼 속에 프랑스가 낄 자리가 없음을 한탄한다. 오늘날의 프랑스는 포퓰리즘에 빠져 공공부문 지출이 크게 증가했고, 세금 인상 정책은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이로 인해 네트워크와 소프트웨어를 동력으로 하는 3차 산업혁명(저자는 이를 IT와 경제의 합성어인 ‘I경제’라고 부른다)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경제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이 3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해야 한다. 미국·독일·중국 3국 출신이 아닌 프랑스 출신 언론인이 중립적 시각으로 본 열강의 세력다툼 해석이 흥미롭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