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로비 합법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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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를 합법화하자는 주장이 국내에서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로비 합법화에 힘을 실어주는 법무부 용역보고서(본지 10월6일자 A1, 8면 참조)를 본지가 입수해 보도하면서 이 주제가 다시 한 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 보고서를 쓴 이우영 서울대 교수는 “국민의 청원권을 보장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려면 로비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법무부에 제출했다.
국내에서는 로비가 합법화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많은 로비스트가 음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형 로펌이 전직 고위 공무원을 고문 등으로 영입해 국회의원이나 입법조사관에게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활동을 하는 게 대표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식사 제공, 선물 등도 뒤따른다. 이런 점을 들어 일부에서는 차라리 로비를 합법화한 뒤 투명성을 높이는 게 낫다는 주장을 편다. 실제로 미국 등 일부 국가는 로비스트가 자신의 신상을 등록한 뒤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반면 로비를 합법화하면 돈과 권력을 가진 일부 집단이 국회를 장악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회 집단 간 힘의 차이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이상 힘 없는 일반 국민은 국회에 대한 영향력이 약해지고 힘 있는 집단의 영향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들 주장의 골자다. 국내에서 로비가 암약한다고 해서 이를 합법화하는 건 단속할 역량이 안 된다는 이유로 불법행위를 합법화해버리는 ‘포기’와 같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이번 맞짱토론에서는 ‘로비 합법화 필요한가’를 주제로 조승민 글로벌입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과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각각 찬성과 반대 입장에서 펼친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찬성 / 국민 알 권리 위해 ‘로비 공개’ 필요…강력한 이익집단 활동 오히려 견제
非공개·非경쟁 시장선 국가자원 효율 배분 어려워
로비의 관점에서 본 한국 정치시장은 공개되지 않은 비경쟁시장이다. 국가는 입법과 정책을 통해 연간 376조원(2015년 기준)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쓰며 엄청난 이권을 창출하고 있다. 당연히 기업과 이익단체들은 입법과 정책, 예산집행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결정되도록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해 국민들은 알 길이 없다. 실제로는 끊임없이 이뤄지는 로비활동이 전혀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공개시장이 경쟁적이기를 기대하기도 어렵지만, 참여 또한 사실상 제한돼 있다. 이 같은 비공개·비경쟁시장에서 국가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 한국에는 로비와 직접 관련된 법이나 규정이 없다. 다만 다른 법을 적용해서 사후적으로 처리할 뿐이다. 한국에서 ‘로비가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전문적인 직업 로비스트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변호사법 등에 의해 금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한 로비, 예컨대 대기업 등에서 하고 있는 ‘대관업무’ 같은 것은 사실상 용인되고 있다. 기업과 이익단체들은 전직 관료 등을 자기 조직에 취업시켜 로비스트 역할을 맡기고 있다. 현행 제도 하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이들의 로비활동 공개를 요구하는 법 역시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따라서 공개되지 않는 것이 ‘음성적 활동’이라면 우리나라의 모든 로비는 당연히 ‘음성적’일 수밖에 없다.
‘로비공개법’(가칭)은 로비활동의 ‘공개’와 직업적 로비스트의 ‘허용’이 핵심이다. 정치시장 관점에서 보면 보다 공개되고 경쟁적인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정치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보면 ‘공개’는 입법과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신장시킨다. 또 부정부패 가능성도 줄인다. ‘허용’은 청원권 향상을 위한 것이다. 국민이 국가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권리는 자신이 직접 할 경우는 물론, 제3자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보장하자는 의미다. 일부에서는 ‘로비스트 합법화’가 불법적인 로비나 부정한 거래를 허용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물론 그렇지 않다. 불법과 부정한 거래는 지금도 그렇듯이 처벌 대상일 뿐이다. 거기에 더해 ‘공개’를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직업적 로비스트를 허용하면 능력 있는 이익집단만 유리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유념해야 할 문제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강력한 이익집단에 가장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집단들은 이미 영향력 있는 전관들을 고용해서 활발한 로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 의무가 없기 때문에 누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실상조차 파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로비의 ‘공개’는 그 자체로 강력한 이익집단의 활동을 제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실체 파악을 통해 능력 있는 집단들의 과도한 로비를 제어하는 대안 마련도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로비공개법이 만능은 아니다. 공직자윤리법, 정치자금법, 김영란법 그리고 윤리규정 등이 함께 제대로 작동돼야 더욱 효과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가령 국회는 김영란법 원안에는 있었으나 국회 입법과정에서 빠져버린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 부분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이 같은 제도의 확립은 정치적 정당성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반대 / 힘 있는 집단이 게임의 우위 점해…힘 없는 다수 배제 고착화 될 것
이익집단 목소리 대표할 정당정치부터 제역할 해야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권력형 비리와 청탁 스캔들이 터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부에서는 로비를 양성화하자는 주장도 점점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사실 역대 정권에서 비리 사건이 터져나올 때마다 “음성적인 부패의 고리를 양지로 끌어내자”는 주장이 줄곧 고개를 들었다. 그런 까닭에 로비 양성화에 대한 논의가 이제는 별로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로비스트 양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돈과 권력과 인맥을 가진 소수가 음성적으로 하는 로비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건전한 게임을 저해하므로 차라리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게 핵심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원주의 원리를 그 배경에 두고 있다. 그러나 로비 제도가 합법화되면 오히려 로비권력의 불평등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한 집단,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지적 자본 소유자가 게임의 우위를 점할 게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로비 합법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들이 법과 제도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고 믿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더 많은 기회를 매수하거나 더 많은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계층은 엄연히 존재한다. 이런 문제점은 현실에서 계층 간 갈등으로 이어진다. 폐해는 로비를 합법화한 미국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에서 로비 합법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공익적 이익집단이 편향적 이익집단을 견제해 기득권의 권력우위를 감소시키거나 중립화할 수 있다”는 주장을 대안으로 내놨다. 일부에서는 “합리적인 시민이 주체가 되는 풀뿌리 로비가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러나 풀뿌리 공동체와 시민사회도 도덕성과 중립성을 쉽사리 인정하기 어려운 불투명한 영역이다. 이익집단의 공익성을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그들의 대표성은 또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는가. 시민사회 내의 권력 불균형이나 이들이 정치·경제권력과 맺고 있는 밀월관계 역시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
결국 이런 현실에서 로비 합법화는 ‘힘 있는 집단에 대한 이익 추구 보장과 힘 없는 다수에 대한 배제·차별’을 제도적으로 고착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힘 있는 집단은 견고한 조직력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전파함으로써 더 영리하게 이익을 추구할 수 있지만 게임 밖에 있는 힘 없는 다수는 그렇지 않다. 벌써 로비에 대한 논의 자체가 얼마나 많은 시민들에게 공론화가 됐는가를 생각하면 로비 합법화라는 발상 자체가 로비의 결과는 아닌지 의심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는 제도권 정치, 특히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제도권을 우회하는 시도가 많아졌고 이런 방법이 갈수록 정당성을 얻고 있다. 로비공론화 논의 역시 이러한 현상의 하나로 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비의 천국인 미국에서조차 로비는 제도권 정치의 보완일 뿐 그것을 대체하는 수단은 아니다. 정당정치는 여러 이익집단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모으고 표출할 수 있는 공식적인 경로다. 따라서 정당정치부터 공고화하는 게 우리 사회의 과제다. 건전한 제도권 정치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로비스트들의 입법이 활개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양병훈/오형주 기자 hun@hankyung.com
국내에서는 로비가 합법화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많은 로비스트가 음성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형 로펌이 전직 고위 공무원을 고문 등으로 영입해 국회의원이나 입법조사관에게 입장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활동을 하는 게 대표적이다. 물론 여기에는 식사 제공, 선물 등도 뒤따른다. 이런 점을 들어 일부에서는 차라리 로비를 합법화한 뒤 투명성을 높이는 게 낫다는 주장을 편다. 실제로 미국 등 일부 국가는 로비스트가 자신의 신상을 등록한 뒤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 반면 로비를 합법화하면 돈과 권력을 가진 일부 집단이 국회를 장악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회 집단 간 힘의 차이가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이상 힘 없는 일반 국민은 국회에 대한 영향력이 약해지고 힘 있는 집단의 영향력이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이들 주장의 골자다. 국내에서 로비가 암약한다고 해서 이를 합법화하는 건 단속할 역량이 안 된다는 이유로 불법행위를 합법화해버리는 ‘포기’와 같다고 이들은 설명한다. 이번 맞짱토론에서는 ‘로비 합법화 필요한가’를 주제로 조승민 글로벌입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과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각각 찬성과 반대 입장에서 펼친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찬성 / 국민 알 권리 위해 ‘로비 공개’ 필요…강력한 이익집단 활동 오히려 견제
非공개·非경쟁 시장선 국가자원 효율 배분 어려워
로비의 관점에서 본 한국 정치시장은 공개되지 않은 비경쟁시장이다. 국가는 입법과 정책을 통해 연간 376조원(2015년 기준)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쓰며 엄청난 이권을 창출하고 있다. 당연히 기업과 이익단체들은 입법과 정책, 예산집행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결정되도록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 대해 국민들은 알 길이 없다. 실제로는 끊임없이 이뤄지는 로비활동이 전혀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공개시장이 경쟁적이기를 기대하기도 어렵지만, 참여 또한 사실상 제한돼 있다. 이 같은 비공개·비경쟁시장에서 국가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재 한국에는 로비와 직접 관련된 법이나 규정이 없다. 다만 다른 법을 적용해서 사후적으로 처리할 뿐이다. 한국에서 ‘로비가 불법’이라고 하는 것은 전문적인 직업 로비스트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변호사법 등에 의해 금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이 속한 조직을 위한 로비, 예컨대 대기업 등에서 하고 있는 ‘대관업무’ 같은 것은 사실상 용인되고 있다. 기업과 이익단체들은 전직 관료 등을 자기 조직에 취업시켜 로비스트 역할을 맡기고 있다. 현행 제도 하에서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이들의 로비활동 공개를 요구하는 법 역시 없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따라서 공개되지 않는 것이 ‘음성적 활동’이라면 우리나라의 모든 로비는 당연히 ‘음성적’일 수밖에 없다.
‘로비공개법’(가칭)은 로비활동의 ‘공개’와 직업적 로비스트의 ‘허용’이 핵심이다. 정치시장 관점에서 보면 보다 공개되고 경쟁적인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정치적 정당성의 관점에서 보면 ‘공개’는 입법과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를 신장시킨다. 또 부정부패 가능성도 줄인다. ‘허용’은 청원권 향상을 위한 것이다. 국민이 국가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주장할 권리는 자신이 직접 할 경우는 물론, 제3자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보장하자는 의미다. 일부에서는 ‘로비스트 합법화’가 불법적인 로비나 부정한 거래를 허용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물론 그렇지 않다. 불법과 부정한 거래는 지금도 그렇듯이 처벌 대상일 뿐이다. 거기에 더해 ‘공개’를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직업적 로비스트를 허용하면 능력 있는 이익집단만 유리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유념해야 할 문제지만 반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강력한 이익집단에 가장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집단들은 이미 영향력 있는 전관들을 고용해서 활발한 로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공개’ 의무가 없기 때문에 누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실상조차 파악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로비의 ‘공개’는 그 자체로 강력한 이익집단의 활동을 제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실체 파악을 통해 능력 있는 집단들의 과도한 로비를 제어하는 대안 마련도 가능해질 것이다.
물론 로비공개법이 만능은 아니다. 공직자윤리법, 정치자금법, 김영란법 그리고 윤리규정 등이 함께 제대로 작동돼야 더욱 효과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가령 국회는 김영란법 원안에는 있었으나 국회 입법과정에서 빠져버린 ‘공직자의 이해 충돌 방지’ 부분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이 같은 제도의 확립은 정치적 정당성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반대 / 힘 있는 집단이 게임의 우위 점해…힘 없는 다수 배제 고착화 될 것
이익집단 목소리 대표할 정당정치부터 제역할 해야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권력형 비리와 청탁 스캔들이 터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부에서는 로비를 양성화하자는 주장도 점점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사실 역대 정권에서 비리 사건이 터져나올 때마다 “음성적인 부패의 고리를 양지로 끌어내자”는 주장이 줄곧 고개를 들었다. 그런 까닭에 로비 양성화에 대한 논의가 이제는 별로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로비스트 양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돈과 권력과 인맥을 가진 소수가 음성적으로 하는 로비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건전한 게임을 저해하므로 차라리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자”는 게 핵심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원주의 원리를 그 배경에 두고 있다. 그러나 로비 제도가 합법화되면 오히려 로비권력의 불평등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한 집단, 그리고 자신의 행위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지적 자본 소유자가 게임의 우위를 점할 게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로비 합법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사회 구성원들이 법과 제도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고 믿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더 많은 기회를 매수하거나 더 많은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사회계층은 엄연히 존재한다. 이런 문제점은 현실에서 계층 간 갈등으로 이어진다. 폐해는 로비를 합법화한 미국에서도 나타났다. 미국에서 로비 합법화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공익적 이익집단이 편향적 이익집단을 견제해 기득권의 권력우위를 감소시키거나 중립화할 수 있다”는 주장을 대안으로 내놨다. 일부에서는 “합리적인 시민이 주체가 되는 풀뿌리 로비가 부패한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그러나 풀뿌리 공동체와 시민사회도 도덕성과 중립성을 쉽사리 인정하기 어려운 불투명한 영역이다. 이익집단의 공익성을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그들의 대표성은 또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는가. 시민사회 내의 권력 불균형이나 이들이 정치·경제권력과 맺고 있는 밀월관계 역시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
결국 이런 현실에서 로비 합법화는 ‘힘 있는 집단에 대한 이익 추구 보장과 힘 없는 다수에 대한 배제·차별’을 제도적으로 고착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힘 있는 집단은 견고한 조직력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전파함으로써 더 영리하게 이익을 추구할 수 있지만 게임 밖에 있는 힘 없는 다수는 그렇지 않다. 벌써 로비에 대한 논의 자체가 얼마나 많은 시민들에게 공론화가 됐는가를 생각하면 로비 합법화라는 발상 자체가 로비의 결과는 아닌지 의심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는 제도권 정치, 특히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목소리를 내기 위해 제도권을 우회하는 시도가 많아졌고 이런 방법이 갈수록 정당성을 얻고 있다. 로비공론화 논의 역시 이러한 현상의 하나로 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로비의 천국인 미국에서조차 로비는 제도권 정치의 보완일 뿐 그것을 대체하는 수단은 아니다. 정당정치는 여러 이익집단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모으고 표출할 수 있는 공식적인 경로다. 따라서 정당정치부터 공고화하는 게 우리 사회의 과제다. 건전한 제도권 정치가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에서 로비스트들의 입법이 활개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사회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양병훈/오형주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