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듣는 에른스트 '여름의 마지막 장미'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30·사진)가 오는 16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클래식 스타 시리즈’ 무대에서 이색적인 레퍼토리로 관객을 찾아간다. 하인리히 빌헬름 에른스트, 에르네스트 쇼송과 프란츠 왁스만 등 러시아 유학 시절 연습했던 비(非)러시아 작곡가의 곡들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짧게는 4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그가 무대에서 연주하지 않았던 곡들이다.

‘제2의 파가니니’로 불릴 정도로 기교가 뛰어났던 19세기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에른스트의 작품을 두 곡 연주한다. 로시니 오페라 특유의 화려한 선율을 바이올린 현으로 만끽할 수 있는 오페라 ‘오텔로’ 주제에 의한 환상곡과 아일랜드 민요 ‘여름의 마지막 장미’에 의한 변주곡이다.

최근 예술의전당 인근 연습실에서 만난 그는 “하나의 주제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여름의 마지막 장미’가 콘서트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라고 말했다. “가을보다는 ‘아직 끝나지 않은 여름’이 주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유학 시절 연주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작품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통일성을 갖출 수 있도록 레퍼토리를 짰어요.”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3번 d단조’, 쇼송의 ‘포엠’과 왁스만의 ‘카르멘 환상곡’도 그동안 그가 드물게 연주했던 곡들이다. “‘포엠’은 퀸엘리자베스콩쿠르에 참가한 2005년 당시 연주한 곡이니 10년이 됐어요. 브람스 소나타 1, 2번은 종종 연주했지만 3번은 진짜 오랜만입니다.”

현란하고 섬세한 기교를 요하는 작품들이다. 비르투오소(탁월한 연주 기교를 지닌 음악가)로서의 권혁주를 만날 좋은 기회다. “고난도의 테크닉과 체력이 필요한 곡들이에요. 오랜만에 연주하는 곡들이 많은 만큼 기억이 아예 나지 않는 곡도 있고요. 왜 이렇게 빠듯하게 프로그램을 짰을까 후회도 많이 했죠.”

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를 졸업한 권혁주는 ‘러시아 음악의 차세대 주자’로 꼽힌다. 하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러시아 작곡가의 곡은 연주하지 않는다. 그가 속한 현악 4중주단 ‘칼라치 스트링 콰르텟’이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에 도전하는 등 최근 러시아 작곡가 레퍼토리를 여럿 연주해서다. “연습이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커요. 멋진 ‘여름의 마지막 장미’로 찾아뵙겠습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