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가 직업선택 기회 모두 차단
보수의 인성교육론도 시대착오적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직업은 언제나 교육의 결과다. 경제성장이나 사회발전도 그 결과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드문 예외가 있다면 자원이 펑펑 쏟아지는 경우가 있겠는데 그것은 때로 국가와 사회를 망치는 주범이다. 좋은 직업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그것에 걸맞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5만달러의 직업을 가지려면 5만달러의 전문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롤즈를 비롯한 소위 좌익 정의론자들이 자본주의를 경멸하면서 교육을 자본주의 교정수단이라고 말할 때조차 이를 지칭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대졸자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백수 처지를 비관하고 있다면 이는 교육의 실패 때문이다. 평준화 교육은 아이들을 놀리겠다는 바보들의 결심이었다. “이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이 부족하다”는 거짓말을, 그 아이가 대학에 실패할 때까지 되풀이하는 비열한 제도다. 평준화는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함으로써 학생들이 미래의 다양한 직업을 선택할 거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는 악의적인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는 눈치도 빠르게 외고나 특목고를 우회하는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 학생을 잡동사니처럼 취급한다. 한국 교육의 그나마의 성과는 사교육 덕분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교육까지 때려 부수고 있다. 최근에는 직업교육조차 직무능력이라는 이름으로 국유화하는 중이다.
그렇게 이공계 학생이 미적분을 모르고, 경제학과 4학년이 ‘왜 어떤 곡선이 원점에 대해 볼록한지’를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니 전공에 걸맞은 일자리가 주어질 리 없다. 철학은 논리학이 없이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지만 한국의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은 놀고먹어도 좋은 과목처럼 치부된다. 아니 고도의 지적훈련이 필요없는 아이들까지 전부 대학으로 쓸어 담는 것이 평준화된 한국이다. 인문계는 더구나 강단 좌익의 온상이다. 비판적 지력이 없으니 간단한 정치 구호만 머릿속에 박힌다.
좋은 연봉을 받으려면 소득의 원천도 글로벌화돼야 한다. 그러나 보편언어인 수학도 실용언어인 영어도 가르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조차 수학과 영어 시험을 쉽게 출제하라고 닦달이다. 국제 수준의 지식과는 점점 멀어진다. 좌우 가릴 것 없이 우물 안 개구리의 세계관만 가르친다. 좌익들은 시대착오적 공산주의를 가르친다. 시대착오적이어서 비교할 그 무엇도 없다. 사악하게도 그들은 학생들의 장래 생활개선이 아니라 오늘의 정치투쟁을 위해 교육을 수단으로 삼는다. 북한체제 찬양을 역사 교육이라고 부르는 정신질환자조차 수를 셀 수가 없다. 교과서의 기업가는 언제나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당으로 묘사된다.
우익진영도 사정은 다를 것이 없다. 이들 중 일부는 인성교육을 강화하면 젊은이들이 체제순응적이 될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들은 인성교육진흥법까지 고안해 냈다. 백수들에게 농업사회적 효제충신 교육을 하자는 꼴이다. 조선 시대 양반붙이들의 썩은 냄새가 풀풀 난다. 반란과 저항은 그런 썩은 냄새가 나는 곳에서 무르익어 간다. 좋은 품성은 직업의 숙련과정을 통해 길러진다. “돈은 국가권력 아래에 있는 모든 것 중에 가장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칸트가 말할 때의 신뢰가 바로 그렇게 형성되는 가치다.
정부는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영세기업 및 골목상권 보호를 통해 비정규직과 알바와 임시직 등 허드렛일자리만 보호해왔다. 그리고 싸구려 교육을 통해 특목고 출신이 아닌 대부분 청년들을 싸구려 노동력으로 만들어왔다. 평준화 백수들은 지금 채울 것도 없는 자기소개서를 들고 울고 있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