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정주영 탄생 100년] "오케스트라 지휘하듯 열정적으로 경영"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멈춰선 한국호, 다시 기업가 정신이다
아산 기업가 정신의 뿌리 -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아산 기업가 정신의 뿌리 -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아산 정주영 탄생 100년] "오케스트라 지휘하듯 열정적으로 경영"](https://img.hankyung.com/photo/201510/AA.10686199.1.jpg)
아산의 경영이 빛을 발한 이유는 한국의 문화 코드와 통했고, 시대적 배경이나 제도적 환경과도 잘 조응했기 때문이다. 1950~1960년대 한국에는 시장 규칙을 구현할 제도적 인프라가 취약했고, 시장주의자들이 강조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신화에 불과했다. 아산은 강력한 위계를 가진 계열화를 통해 ‘시장의 실패’를 극복하는 내부화 전략을 폈다.

아산의 경제적 민족주의 지향은 발전국가의 방향과도 일치했다. 중화학공업 진출은 정부의 방위산업 정책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결과였다.
아산은 현대건설 출신 제1주자들이 악기별로 포진한 오케스트라를 ‘열정적으로 매우 빠르게(allegro molto appassionato)’ 지휘했다. 표준화된 공법에 따라 정해진 절차를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교과서적 방법 대신 자율적 학습을 통해 얻은 암묵지(暗默知)를 ‘우선행동원칙’에 따라 과감하게 활용했다. ‘공기 단축’은 속도경영과 고속성장의 비결이었다. 이는 당시 부실한 금융시스템 아래에서 어쩔 수 없이 쓸 수밖에 없었던 높은 사채이자를 줄이기 위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기도 했다. 아산은 장시간 노동을 지지했다. 후발 산업국인 한국이 따라잡기 경쟁을 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보았다.
21세기 세계화와 개방화의 압력 속에 아산이 남긴 한국적 경영은 변화한 환경에 놓여 있다. 현대그룹은 조선시대 양반가 분재기(分財記)와 같은 방식으로 계열 분리했고, 2, 3세 경영의 무대가 됐다. 속도경영과 장시간 노동은 위험사회의 안전추구 의식과 공존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나오는 ‘경제민주화’ 요구는 위계적 거버넌스의 적실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서구 기업모델과의 거리가 바짝 좁혀진 현재의 시점에서 아산이라면 이런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까. 그 해답은 아산 모델의 ‘기계적 적용’이 아니라, 그가 당시 문제 해결을 위해 고민했던 ‘방법의 창의성’을 현 상황에 맞게 구현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