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드워드 권 "셰프의 예능화, 문제다"

/ 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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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봉구 기자 ] 입지전적 스토리에 두바이의 유명 호텔 버즈 알 아랍 수석총괄주방장(head chef)을 지낸 화려한 경력까지. 그에게 쏟아진 스포트라이트는 예견된 결과였다. 스타 셰프의 원조로 꼽히는 에드워드 권(본명 권영민·사진)을 서울 청담동 그의 레스토랑 랩24에서 만났다.

이미 많은 것이 알려진 그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하지만 직접 만난 에드워드 권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봐왔던 모습과 꽤 달랐다. 브라운관에서 깐깐하고 냉철한 요리 심사위원이었던 그는 일상에선 훨씬 쾌활하고 자기만의 철학이 확고한 사람 같았다. 셰프에 사업가, 교수까지 1인3역을 해내고 있는 이 스타 셰프는 인터뷰 내내 식품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센 이미지가 박혀있죠. 동료들에게 물어보세요. 생각보다 어리숙하고 농담도 많이 한다고 할 걸요? 방송에서 왜 그렇게 화 내냐고들 하시는데, 전 주방에서만큼은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요리는 고객 반응이 가장 빠른 예술이에요.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됩니다. 물론 잘못을 저지르면 욕도 하지만 칭찬에 인색한 편은 아닙니다. 잘했을 땐 뽀뽀도 해줘요. 하하.”

이름도 경력도 ‘외국물’이 짙게 풍기지만 그는 강원도 출신이다. 원래 신부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장손이라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결국 스무살에 가출해 무작정 상경했다. 숙식을 제공하는 경양식집에 들어간 것이 지금의 에드워드 권이 있게 한 출발점이 됐다. 군 제대 후 체계적으로 요리를 배우고 싶어 고향 인근의 강릉영동대(당시 영동전문대) 호텔조리과를 졸업했다.

“셰프는 현장 경험이 최우선이에요. 해외유학 다녀온 이보다 고졸이라도 먼저 주방에 들어온 사람을 쳐주는 직업이죠. 그래서 전 가방끈 때문에 4년제대 갈 필요 없다고 얘기합니다. 전문대 교육과정이면 충분하거든요. 조리특성화고를 졸업했다면 아예 대학 가지 말고 바로 현장으로 가라고 권하기도 해요. 이 세계에서 학력은 자기만족일 뿐이지, 경험이 더 중요하니까요.”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 셰프들. / 출처= JTBC 홈페이지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 셰프들. / 출처= JTBC 홈페이지
- 셰프 열풍이다. 스타 셰프의 원조 격인데 어떻게 보나.

“사람들이 저를 두고 ‘스타 셰프의 시조새’라고 하더라. (웃음) 긍정적 측면이 있다. 대중이 셰프란 존재를 통해 음식이나 요리, 식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니까.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이런 셰프 열풍이 음식문화의 향상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 음식 먹는 걸 ‘때운다’고 표현하는 나라는 아마 한국밖에 없을 거다.”

- 그런 분위기가 바뀌는 것 같은데.

“미디어에 나온 셰프를 통해 메시지가 전달되는 현상 자체는 바람직하다. 음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몰아가는 분위기랄까. 셰프가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해야 하는데, 급속도로 시장이 커지면서 예능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렸다. 인기를 끄니까 미디어도 셰프도 절제를 못하는 거다. 셰프가 ‘과소비’되고 있다.

이건 문제다. 셰프가 예능인처럼 됐다. ‘연예가중계’(KBS)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 보고 깜짝 놀랐다. 예를 들어보자. 의사가 방송에만 나오고 병원은 비워놓으면 그게 의사인가? 방송인이지.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셰프가 전문가로써 ‘식문화 이렇게 바꾸자’고 말한다고 해서 메시지의 파급력이 있을까? 절제가 필요한 부분이다.”

- 본말이 전도됐다는 건가.

“셰프가 주방을 떠나면 안 된다. 분위기에 휩쓸려 본업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방송 3~4개 프로씩 출연하는 셰프들도 나왔다. 저도 방송을 겪어봤지만 그렇게 하면 주방에 붙어있을 수가 없다. 물론 지금은 좋겠지. 하지만 셰프에 환호하는 분위기가 계속된다는 보장이 있나? 이 시절이 지나가고 주방으로 돌아갔을 때 상실감과 괴리감이 크게 다가올 거다.

선배이자 동료의 한 사람으로 걱정된다. 제 경우엔 나름대로 방송 출연을 절제했다. 동시에 2개 프로를 하지 않는 원칙을 세웠다. 한 주에 하루 정도씩 비운 셈인데 2년여 시간이 쌓이니 ‘레스토랑에 가도 없더라’는 소문이 나더라. 주방을 비운 사이 찾아오는 고객들을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본업을 지키면서 미디어에 나와야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지 않겠나.”

- 셰프가 되겠다는 사람이 많아졌다. 에드워드 권은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처음부터 셰프를 꿈꾸진 않았다. 원래 신부님이 되고 싶었다. 종교가 가톨릭이어서. 하지만 집안의 반대가 심했다. 장손이라 할머니가 극구 말리셨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스무살에 가출해 상경했다. 24~25년 전인데 그때만 해도 서울에 경양식집이 많았다. 먹고 자는 게 막막한 터에 숙식 제공이라길래 들어갔다. 시작은 서빙이었다. 그런데 같이 있던 형이 주방에서 일하면 월급 2만원 더 준다더라. 거기에 혹해 주방생활 시작한 거지. (웃음)”

- 의외다.

“영장이 나왔는데 어린 마음에 군대를 늦게 가고 싶었다. 대학 가면 입대 연기가 돼 고향 근처 전문대에 입학했다. 제대하고 스물너댓쯤 되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이 들더라. 기왕 조리과 왔으니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쭉 배우고 일해서 셰프가 된 거다.”

/ 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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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케이푸드를 설립해 대표를 맡았다. 어떤 회사인지 소개해 달라.

“식품 관련 기업이다. 지자체와 손잡고 지역특산물을 이용해 제품을 개발하거나 급식, 메뉴 개발·컨설팅 등의 사업을 한다. 식품 시장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 세계적으로 자동차 시장의 무려 40배 규모다. 이케이푸드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보려 한다. 회사는 매년 200% 이상 매출 신장세다. 작년엔 150억원 정도 매출을 올렸다. 단 전문직업인이 사업을 하는 걸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회사가 좀 더 성장하면 제 이름을 딴 이케이푸드에서 사명을 변경할 생각이다. 프레시안 하면 CJ가 떠오르는 것처럼 브랜드를 구축할 계획이다.”

- K푸드 시장에 관심이 많구나.

“해외에 한국 음식과 식문화를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올 초 모스크바에 한식당을 열었고 내년엔 오사카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에 한식당과 레스토랑을 오픈한다. 한국 셰프 브랜드로 세계 시장을 개척하는 의미가 크다고 자평한다. 수십년 뒤에 ‘셰프 문화를 뿌리내리고 다양한 관련 사업을 통해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데 기여한 인물’이란 평가를 받고픈 욕심이 있다.”

- “된장찌개가 만원 넘으면 비싸다고 하는 건 문제”라고 했다. 무슨 말인가.

“전체 맥락을 얘기하면 이렇다. 1만원 이상 파스타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된장찌개가 그 가격이면 비싸다고 하지 않나. 그건 아니란 거다. 한식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지금도 강연에서 매번 얘기하는 레퍼토리다. 제가 국내에서만 일했다면 그런 생각을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 생활해보면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 한식을 들고 세계 시장에 진출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비비고 브랜드를 밀고 있는 CJ를 정말 높게 평가한다.

식품·식재료 시장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다. 가랑비에 옷 젖듯 사람들은 식비를 가장 많이 지출한다. 하루라도 밥 안 먹고 살 순 없으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수출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돌이켜보면 음식 한류인 ‘대장금’ 열풍이 절호의 기회였는데 아쉽다. K푸드 자원이 없진 않다. 우리 참기름은 최고다. 국내산 참기름 한 방울의 향을 중국산 열 숟가락이 못 따라온다. 일본 관광객도 우리 김 엄청나게 사 간다. 이제부터라도 전략적으로 산업을 키워야 한다.”

- 모던 한식 시장은 커지는 추세인데.

“부정적으로 본다. 젊은 셰프들이 모던이란 이름으로 너무 서양 재료를 마구 섞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푸아그라(오리나 거위의 간)를 써서 만든 음식을 한식이라 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런데 미디어는 모던 한식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면 이제 요리에 입문하는 친구들은 그런 트렌드를 좇게 된다. 자칫 한국적 맛의 뿌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든다. 세계화된 음식은 모두 그 나라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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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단에도 서고 있다. 제자들에겐 어떤 스승인가.

“방송에서 심사위원을 맡아 엄한 독설가 이미지가 굳어졌는데 학생들에게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활용한다. 수업방식은 좀 독특해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현직 셰프 교수들은 실습 위주로 강의한다. 보통 요리를 보여주고 따라하게끔 하는데 저는 요리가 만들어지는 이유를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1+1은 2’라고 가르친다면 전 ‘1+1은 왜 2가 되는지’를 강의한다.

왜 요리 많이 안 가르쳐주느냐고 묻는 학생들도 있다. 글쎄. 3000가지 요리를 할 줄 안다면 훌륭한 셰프인가? 아니다. 사실 셰프는 자기가 몇 가지 요리를 하는지 모르는 게 맞다. 무궁무진한 식재료를 쓰고 조리법을 응용해 다른 음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접근 방식과 생각 자체의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요리는 답습의 수업이 아니라고 늘 학생들에게 말한다.”

- 에드워드 권만의 요리 철학이 있다면.

“방송에서 왜 그렇게 버럭 화 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박찬일 셰프는 에드워드 권이 스타 셰프 고든 램지의 캐릭터를 오마주한 것 같다고 평했다. 고든 램지는 ‘헬스 키친’이란 프로에서 셰프 지망생에게 가차 없이 독설을 날려 주목받았다.) 음식을 만드는 시간만큼은 엄격해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주방에서 실수가 나와 음식을 다시 만들면 고객의 5분을 뺏게 된다. 한 명으로 그치는 게 아니다. 도미노가 된다. 결국 모든 고객의 5분을 뺏는 것이다. 고객들은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음식을 먹는다. 걸맞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기본이다. 적어도 비즈니스 할 땐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 올해 전문대 엑스포에 참석했다.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행사 주최 측인 전문대교협이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전문대학인 상’ 1회 수상자인 인연이 있다. (웃음) 제가 전문대 나와서가 아니라 요리 분야만큼은 전문대 공부만으로도 충분하다. 2년이면 기본적 요리 지식과 기능은 웬만큼 익힐 수 있다. 그래서 셰프 지망생들에게 전문대나 2년제 전문학교를 가라고 권한다. 셰프는 가방끈이 아니라 현장 경험이 중요한 직업이니까.”

- 셰프가 꿈인 초등학생들도 많다고 하더라.

“꼬마 요리사로 유명했던 노희지씨가 자라서 탤런트가 됐다. 꿈은 바뀔 수 있는 거다. 어릴 때부터 하나만 보고 달려가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하다간 지쳐버릴 수도 있다. 먼저 현실을 얘기해줘야겠다. 셰프는 몸으로 뛰는 직업이다. 환상만 갖고 오면 버티기 힘들다. 고학력도 통하지 않는다. 도제식의 부작용일 수 있지만 어쨌든 주방에 먼저 들어온 사람이 선배다.

그 때문에 셰프 지망생들에게 전문대에 가라고 하는 거다. 조리특성화고를 나왔다면 아예 전문대도 갈 필요 없다고 말한다. (웃음) 4년제대 중 경희대·세종대 등의 관련 학과가 유명한데 거길 나왔다고 더 쳐주지 않는다. 오히려 2년제 졸업하면 4년제 출신에 비해 한 직급 앞서간다. 그러니 학벌이나 학력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 전문대의 투자 대비 효과가 더 뛰어나다.”

- 그동안 말 못한 얘기들이 있을 것 같은데.

“소위 경력 파문 후 3년 정도 지났다. 안타까웠다. 직함이 호텔 헤드셰프라면 한국말로 뭐라고 쓰겠나. 일일이 나서 해명하는 것도 웃기다 싶어 별다른 얘기를 안했다. 왜 권영민이 아니라 에드워드 권이냐고 따져묻는 사람도 있었다. 이름 때문에 검은머리 외국인 같다는 것이다. 제가 해외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그때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겐 에드워드 권으로 통했다. 한국에 돌아왔다고 해서 갑자기 권영민으로 불러달라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웃음)

최근엔 셰프를 국내파와 해외파로 나누더라. 나누는 것 자체도 이상하지만, 해외파는 특혜를 받았고 국내파는 실력으로 승부한다는 뉘앙스다. 이건 짚고 넘어가야겠다. 해외파가 훨씬 어렵고 힘들다. 국내에서보다 몇 배 더 노력해야 한다. 왜냐고? 현지에선 외국인이니까. 정 인정 못하겠다면 직접 해외에 나가서 해보면 되는 문제 아닌가. 웃어넘기지만 쓴 웃음만 나온다.”
[잡프런티어 시대, 전문대에 길을 묻다] "셰프는 현장경험이 최우선…가방끈 의미없다"
◆ 나에게 전문대란…

셰프가 될 수 있도록 기본적 소양과 틀을 잡아준 곳. 전문대라고 하면 뭔가 애달픈 느낌이 있다. 대학이라는 풍미를 즐길 만한 여건이 안 돼서 그런 면이 있다. 과정 자체가 2년이고 그나마도 2학년1학기 마치면 빨리빨리 취직하는 분위기라 더 그렇다. 1학년1학기가 지나면 벌써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4년제대는 1학년 때 이것저것 교양수업 많이 듣는데 전문대는 입학과 동시에 곧바로 전공으로 들어가면서 취업 준비도 시작해야 하니까. 지도 방식 역시 취업 위주에 현장형 강의이고. 항상 현장감과 긴장감을 갖고 준비할 수 있는 곳이 전문대라고 생각한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사진= 변성현 기자 byun8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