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금융투자업 개혁은 시작됐다
레슬링과 유도, 복싱, 주짓수에 무에타이까지 혼합한 종합격투기인 UFC의 인기가 높다. UFC에서는 척추나 뒤통수 가격처럼 상대를 위험하게 하는 기본적 반칙 몇 가지를 제외하면 전통 격투기에서 볼 수 없었던 현란한 격투 기술을 볼 수 있다. 전통 격투 종목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보자는 혁신적 발상과 과감한 실행이 UFC라는 스포츠의 성공을 가능케 했을 것이다.

경쟁력 제고가 한국금융업의 핵심과제로 등장한 가운데 정부가 증권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종전보다 확대된 자율성으로 무장하고 증권업 고유의 혁신과 창의를 통해 차별화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조치다. 금융산업, 그중에서도 ‘서자’ 취급을 받아온 증권산업에 활력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증권사들이 기업에 지원할 수 있는 자금 여력규모가 크게 늘어난 것이 눈에 띈다. 증권사는 기업여신 한도 확대로 최대 18조원을 실물경제에 추가 공급할 수 있게 된다. 자금 확보가 힘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도 확대될 전망이다.

정부가 중소기업 기업금융(IB)업무 특화 증권사를 육성하기로 한 대목도 고무적이다. 그간 IB업무는 대형 증권사 중심으로 활성화하는 것이 정책방향이었는데 이번에 중소형 증권사도 IB업무에서 특화·전문화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됐다. 외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특화 증권사들이 출현해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고 있다. 자기자본 3000억원 내외의 미국 중소형 증권사인 JMP그룹과 FBR이 대표적이다. 이 두 회사는 중소기업 관련 투자은행 업무에 특화해 있다. 2013년 기준으로 이들 회사의 IB업무 수익 비중은 각각 50%, 76%에 이르며, 투자자본 대비 수익률(ROE)은 각각 6%, 32%에 달한다.

사모 자본시장 활성화 방안도 글로벌 트렌드에 맞는 시의적절한 제도개혁이다. 기업의 원활한 자금조달 지원을 위해서는 공모와 상장시장뿐만 아니라 사모와 장외시장도 균형있게 발전할 필요가 있다. 사모시장은 상대적으로 벽이 높은 공모시장을 넘지 못하는 기업들에 기회를 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금융투자업이 고용창출에 기여하는 통로가 될 것이다. 미국에서 끊임없이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나오는 배경에는 펄떡거리며 살아 움직이는 사모시장이 있다. 올 상반기에도 기업가치가 10억달러가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인 ‘유니콘 기업’들이 사모로 200억달러를 조달했다. 페이스북은 기업공개(IPO) 전에 사모시장에서 받은 IB 자금으로 성장했다. 트위터, 링크트인, 징가도 사모시장을 이용해 성공한 기업들이다.

영업 자율성이 확대된 점도 긍정적이다. 자본시장의 역동성을 키우려면 증권사의 자율성·창의성이 커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증권사 업무단위별로 정보교류를 차단한 ‘차이니즈월’을 사전규제 방식에서 사후감독 방식으로 전환해가겠다는 방안도 바람직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증권사 업무영역을 자기자본 규모로 구분한 점이다. 중소형 증권사도 실물경제에 적극 기여할 수 있도록 자기자본 규모에 따른 업무영역 제한을 좀 더 풀어줄 필요가 있다. 전문투자자의 범위가 넓어진 것은 바람직하나, 투자자가 사전등록을 하는 절차적 번거로움은 여전하다. 또 증권사 레버리지비율 규제 완화라든가 법인지급결제 허용 같은 이슈가 다음번 개혁과제로 넘어간 것이 아쉽다.

이제 공은 금융투자회사로 넘어왔다. 자율성이 확대된 만큼 리스크 요인과 내부통제 시스템을 점검하고 투자자 보호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이 기회에 금융투자산업이 ‘산업 DNA’에 내재된 창의성과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이끄는 산업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해본다.

황영기 < 금융투자협회 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