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한성호 기자 sung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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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은행, 자산운용사, 투자자문사 등 국내 금융회사들이 업권을 막론하고 로보어드바이저(로봇과 투자자문가의 합성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컴퓨터가 자동으로 개인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로보어드바이저가 해외 시장에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면서 국내에서도 젊은 층의 자산관리 수단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삼성·미래에셋운용 출격

1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1, 2위 업체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출격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자산군별 ETF를 자동으로 자산배분하는 자체 로보어드바이저 시스템을 상당 부분 구축했다. 증권사나 은행과 업무 제휴를 맺어 로보어드바이저 시스템을 제공하고 투자일임·자문 수수료를 받거나 온라인펀드판매사를 통해 ETF로 자산배분을 하는 재간접펀드를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준용 미래에셋자산운용 멀티에셋부문 대표는 “자산운용사는 증권사나 은행과 달리 직접 고객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며 “목표 수익률과 위험률에 따라 최적의 자산배분을 해주는 콘텐츠로 승부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사와 은행은 기존 프라이빗뱅킹(PB) 조직을 통해 로보어드바이저 고객 저변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가장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대우증권이다. 에임(AIM), 디셈버앤컴퍼니, 쿼터백랩, 데이터앤애널리틱스(DNA) 등 핀테크(금융+기술)업체와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추진을 위해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오인대 대우증권 스마트금융본부 팀장은 “그동안 자산관리 서비스와 거리가 멀었던 젊은 층과 자산 규모가 작은 고객에게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연결해주는 창구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NH투자증권은 이달 ‘WM(자산관리) 핀테크’ 태스크포스를 발족했다. 여기에서 PB 고객과 향후 인터넷은행 이용자에게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신한금융투자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한 주가 흐름 예측 기술을 보유한 업체 스마트포캐스트와 관련 투자 서비스를 준비하기 위해 MOU를 체결했다. 한국투자증권도 쿼터백랩 등과 로보어드바이저 업무 제휴를 맺었으며 삼성증권도 사업 추진을 위해 별도 팀을 꾸렸다.

은행권에서는 하나은행이 KAIST와 공동으로 인공지능(AI) 자산운용을 내년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WM에 로보어드바이저 기능을 접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규제 환경도 유리

규제 환경도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활성화에 유리해지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인터넷전문은행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활성화에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양신형 쿼터백랩 대표는 “당장은 증권사 지점을 통해 고객과 투자일임계약을 맺어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내년부터 인터넷은행이나 ISA 고객 계좌에 로보어드바이저 기능이 탑재되면 이용자 저변이 크게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금융당국은 투자일임계약 체결 시 투자자와 금융회사가 대면거래를 통해서만 가능한 계약을 비(非)대면으로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증권사 지점을 통하지 않고 개인이 직접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 로보어드바이저 핀테크업체를 이용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가 도입을 추진 중인 독립투자자문업자(IFA) 제도도 로보어드바이저 시장 확대에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는 은행, 증권사 등이 고객에게 투자상품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등 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하더라도 상품 판매수수료만 받을 뿐 자문수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배재규 삼성자산운용 전무는 “해외 로보어드바이저처럼 다양한 ETF로 자산관리를 해주는 시장이 정착하려면 상품 판매수수료가 아니라 자산관리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IFA 도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