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바리연가집(실천문학사) 中
시집 바리연가집(실천문학사) 中
물소리에 기대앉아 바라보네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네
구불구불 물소리 바위로 들어가고
구불구불 굽은 뼈 벼랑으로 들어가고

물소리에 기대앉아 바라보네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네
나막신 한 켤레 들고
바라보네 바라보네

이 밤
살아 있는 것들 모두 거룩해질 때까지

시집 《바리연가집》(실천문학사) 中

깊은 밤 물소리에 몸이 젖을 때가 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몸이 지워져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던 손이, 헛된 욕망을 소화하지 못한 위장이 물소리에 씻겨지는 것 같을 때도 있습니다. 이제 그만 얼룩 묻은 사람은 나막신 한 켤레 들고 맑은 사람에 젖어들어야겠지요. 물소리에 가만히 기대앉아 보는 건 어떨까요. 살아 있는 한 사람을 씻으며 거룩해지는 시간을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김민율 시인 (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당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