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과 서울시향 단원들이 지난 19일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연주를 마치고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인사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과 서울시향 단원들이 지난 19일 일본 도쿄 산토리홀에서 연주를 마치고 관객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인사하고 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텅 빈 무대를 향해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관객 1500여명 중 자리를 뜬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자기 자리나 통로에 선 채 기립박수를 보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과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이 앙코르곡까지 마치고 퇴장한 지 한참 지났는데도 그랬다. 마에스트로뿐 아니라 오케스트라 단원까지 모두 무대에서 철수한 뒤에도 박수갈채가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정명훈의 브람스에 환호·갈채…도쿄 밤은 뜨거웠다
잠시 후 정 감독과 서울시향 단원들이 다시 나타났다. 환호가 쏟아졌다. 관객들이 무대를 향해 몰려갔다. 정 감독은 무대 위에서 허리를 굽혀 사람들이 내미는 손을 일일이 잡아줬다.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관객은 양손을 머리 위로 올려 흔들었다. 청소년 팬들이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는 모습 같았다.

지난 19일 일본 도쿄의 클래식 전용 연주공간인 산토리홀 메인홀에서 열린 서울시립교향악단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산토리홀이 세계적 음악가 한 명을 선정해 한 주간 집중 조명하는 ‘산토리홀 특별무대’의 올해 첫 무대였다. 산토리홀은 한·일 수교 50년을 맞은 올해 특별무대의 주인공으로 정 감독을 선정했다. 이날 연주곡목은 요하네스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이중 협주곡’과 ‘교향곡 4번’. 정 감독은 앙코르곡도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1번’을 택해 ‘정명훈의 브람스’를 관객에게 선사했다.

‘이중 협주곡’은 첼로와 바이올린 독주자의 호흡이 완벽히 조화를 이뤄야 하는 고난도의 곡이다. 독주자 각자에게 요구되는 기교도 상당한 수준이다. 이날 협연자로 첼리스트 송영훈과 서울시향 악장인 바이올리니스트 스베틀린 루세브가 무대에 섰다. 두 연주자는 끊임없이 시선을 주고받으며 긴밀하게 감정을 표현했다. 때로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때로는 대화를 나누는 듯 두 악기가 치열하게 빚어내는 선율이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뤘다.

가장 브람스다운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4번 연주는 서사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해석이 돋보였다. 정 감독은 목디스크로 불편한 가운데도 사지를 격렬히 움직이며 곡에 담긴 짙은 고독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박수갈채를 받으며 무대를 오르내리던 정 감독이 돌연 팔을 휘둘러 시작한 헝가리 무곡 1번에선 유려한 선율과 원숙한 해석이 돋보였다.

일본 음악평론가 야마다 하루오는 “중후하면서 깊이가 있는 멋진 무대로, 브람스다운 브람스였다”며 “모든 곡을 브람스로 선택한 이유를 알겠다”고 말했다. 한 여성 관객은 “정 감독의 풍부한 표현력이 돋보이는 무대였다”며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하모니가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일본 최초의 콘서트 전용홀인 산토리홀은 울림이 좋기로 이름난 공연장이다. 박수 소리마저 장대비가 쏟아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거장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은 산토리홀을 가리켜 ‘소리의 보석상자’라고 했다. 이곳에서 음색이 풍부한 브람스의 곡을 듣는 건 ‘소리의 폭포’ 한가운데 서 있는 느낌이었다.

정 감독은 20일 도쿄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 등을 연주했다. ‘정명훈 특별무대’는 21일 공개 지휘 마스터클래스, 22일 서울시향 단원·일본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실내악 콘서트 등으로 이어진다.

‘산토리 특별무대’에는 2012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2013년 피아니스트 우치다 미츠코, 지난해 미도리 고토 등 세계적 명연주자가 이름을 올렸다. 올해 정 감독에 이어 내년엔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가 특별무대에 선다.

도쿄=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