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축협 조합장이 뭐길래"…진흙탕 싸움된 선거판
나(조모씨) 같은 축산업 종사자에게 축산업협동조합 조합장 자리는 선망의 대상이다. 내가 대의원으로 활동했던 수원축협의 경우 한 해 굴리는 돈이 3조원이다. 조합 인사권은 물론 예산과 각종 사업에 대한 권한이 조합장 손에 달려 있다. 조합원의 표심을 좌우할 수도 있어 지역구 국회의원들도 머리를 숙이는 자리다.

지난 3월11일 ‘미니 지방선거’라 불린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열렸다. 혼탁한 불법선거 와중에 하마터면 나도 철창행으로 직행할 뻔했다. 지난해 10월의 일이다. 수원축협 조합장 후보자인 장모씨와 방모씨는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10월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단일화하려다 물거품이 되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 아닌가요. 우리 서로 2억원짜리 차용증을 쓰고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에게 위약금 조로 돈을 받는 것은 어떨까요.” 장씨와 방씨는 ‘으샤으샤’ 합의했다.

이듬해 문제가 생겼다. 방씨는 다른 일로 소송 중이었는데 벌금형이 확정되면 선거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장씨는 “차용증은 없었던 일로 하자”고 약속을 엎었다. 장씨의 마음은 수시로 바뀌었다. 그는 내게 전화해 “방씨의 지지층이 상당하던데…. 다른 후보 캠프에 붙으면 나에게 불리한 거 아닐까?”하며 걱정했다. 후보 단일화를 원했던 나는 순수한 마음에서 대안을 제시했다. “방씨의 도움이 필요하면 그만큼의 예우를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두 사람 간 차용증을 직접 주면 선거법 위반 위험이 있으니 내가 중재를 해주겠습니다. 장씨 당신이 나한테 2억원 차용증을 써주면 내가 다시 방씨에게 차용증을 써줄게요.”

장씨는 “‘스리쿠션 차용증’도 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차용증 쓰기를 거부했다. 결국 장씨는 조합장에 당선됐다. 얼마 뒤 경찰 조사를 받으라는 연락이 왔다.

법원 판단은

고일광 수원지방법원 판사는 지난 14일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방씨와 조씨에게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들이 후보직에 대한 포기를 대가로 장씨에게 2억원의 차용증 작성을 요구했다는 공소사실을 뒷받침하기 부족하다”고 무죄 판결했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