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도 넘은 삼성 앞 시위
서울 서초동 삼성물산 본사 앞에서 이달 초 ‘굿판’이 벌어졌다. 각종 ‘신’들이 그려진 기괴한 무늬의 커다란 판을 세우고 그 앞에 상을 차린 뒤 짙은 화장을 한 무당들이 실제로 굿을 했다. 옆에선 술에 취한 듯한 중년 남성들이 길바닥에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삼성을 방문한 외국인 바이어들이 봤으면 놀랄 만했다.

이들은 한 사찰에서 온 시위대였다. 삼성물산이 도로 공사를 하는데, 공사 현장에서 가까워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공사 발주자는 국토교통부지만 이들은 삼성을 시위 장소로 택했다. 결국 삼성물산은 공사비용 중 각종 피해보상액으로 책정해 놓은 금액의 일부를 이들에게 주는 방안을 놓고 합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사옥 앞은 수많은 시위대의 온상이 됐다. 반도체 직업병 관련 시위대가 상주하고 있고 각종 1인 시위가 거의 매일 이어진다.

시위는 전략적이다. 반드시 경찰에 신고한 뒤 시위한다. 때때로 법이 정한 시위의 소음 기준을 넘지만, 경찰이 출동하면 어김없이 잠잠해진다. 현장에서 경찰이 보고 있지 않으면 소음 기준을 넘었다는 기록이 있어도 시위를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인근 주민 민원이 들어올 시간이면 철수한다.

또 자극적이다. 굿판을 비롯해 소복 등 섬뜩한 복장들이 자주 등장한다. 시위를 자제시키려 하면 자해를 하는 일도 있다. 영어로 된 현수막도 종종 등장한다. 삼성 경영진에 대한 저주 섞인 욕설도 있다.

삼성은 국내 최대 기업이다. 당연히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있고, 갈등도 시위도 있을 수 있다. 삼성 역시 최선을 다해 이들과의 대화에 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시위를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서울 한복판에서 굿판까지 펼쳐지는 것을 보고 ‘선을 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 반도체 백혈병 시위대는 매년 영업이익의 일정부분을 보상금으로 지급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 삼성도 언제까지 ‘이미지’만 생각하며 가만히 있을 일만은 아닌 듯하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