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결선에서 조성진이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하고 있다. 금호문화재단 제공
지난 18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7회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결선에서 조성진이 쇼팽의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하고 있다. 금호문화재단 제공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대형 신인’ 탄생은 6년 전 예고됐다. 일본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에서 2009년 열린 제7회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다. 이 대회 우승자가 역대 최연소이자 동양인 최초 우승자라는 소식에 세계 언론이 들썩였다. 주인공은 당시 예원학교에 재학 중이던 열다섯 살 소년 조성진이었다.

성인 대회 데뷔 무대를 우승으로 장식했던 그가 이번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피아노콩쿠르를 제패했다. 조성진은 지난 18~20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 결선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대회는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음악 콩쿠르로 꼽힌다.

올해 쇼팽 콩쿠르에는 27개국 160명의 연주자가 예선에 참가해 20개국 78명이 본선에 올랐다. 3차의 본선 경연을 통과해 결선까지 진출한 사람은 조성진을 포함해 8개국 10명. 그는 18일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으로 가장 먼저 결선 연주를 마쳤다.

조성진은 최종 심사 결과를 발표하기 직전 프레데리크쇼팽협회와의 인터뷰에서 “쇼팽 콩쿠르 참가는 어릴 적부터의 꿈”이라며 “드디어 꿈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쇼팽 작품에 대해서는 “기품 있고 극적인 데다 시적이고 향수를 불러일으킨다”고 표현했다. 조성진은 이번 콩쿠르 준비를 위해 수년간 쇼팽 작품 연주에 공을 들였다.

그의 결선 연주를 인터넷 생중계로 지켜본 스승인 신수정 서울대 음대 명예교수(피아니스트)는 21일 전화 통화에서 “완벽이라는 상태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조성진의 연주는 완벽에 가장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신 교수는 “그동안 성장한 음악적 깊이가 고스란히 느껴졌다”며 “뭐라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콩쿠르 2위는 캐나다의 샤를 리샤르 아믈렝(26)이 차지했다. 케이트 리우(21·미국)가 3위와 마주르카 최고연주상을 받았으며 에릭 루(17·미국), 야이크 양(17·캐나다) 등이 뒤를 이었다.

조성진은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처음 시작했다.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열 살 때다. 첫 독주회는 열한 살이던 2005년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금호영재콘서트 무대에서 가졌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거치며 신 교수와 박숙련 순천대 교수에게 배웠다. 2012년부터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에서 미셸 베로프에게 지도받고 있다.

국제콩쿠르에 나갈 때마다 좋은 성적을 올려 주목받았다. 2008년 국제청소년쇼팽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한 데 이어 2009년 하마마쓰 국제피아노콩쿠르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고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는 3위에 올랐다. 지난해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도 3위를 차지했다.

그는 신중하면서도 과감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신 교수는 “원하는 것을 달성하기 위해 굉장한 집중력을 발휘한다”며 “내성적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고, 매우 사려 깊은 타입”이라고 말했다. 일곱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해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함께 배웠다.

그의 연주를 들은 거장들이 먼저 ‘러브콜’한 사례가 많다. 차이코프스키콩쿠르에 나갔을 때는 당시 심사위원장이던 지휘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직접 전화를 걸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극장 독주회를 부탁했다. 로린 마젤은 우연한 기회에 조성진을 만나 2009년 캐슬턴페스티벌에 초청했다. 그는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과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가 각별히 아끼는 젊은 연주자이기도 하다. 서울시향과 수차례 협연했으며, 두 거장으로부터 음악적 조언을 듣고 있다.

이번 쇼팽콩쿠르에서는 심사위원단이 네 시간 넘게 결선 최종 심사를 끌면서 한때 우승자가 나오지 않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돌기도 했다. 결국 조성진이 우승자로 뽑혔다. 그는 1위 상금 3만유로(약 3860만원)와 폴로네이즈 최고연주상 상금 3000유로(약 386만원)를 받았다. 이번 콩쿠르 입상자들은 21~23일 바르샤바 필하모닉 콘서트홀에서 갈라콘서트를 한 뒤 내년 초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돌며 연주한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