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K옥션 경매에서 12억원에 낙찰된 천경자 화백의 ‘초원Ⅱ’.
2009년 K옥션 경매에서 12억원에 낙찰된 천경자 화백의 ‘초원Ⅱ’.
한국화가 천경자 화백(사진)이 지난 8월6일 미국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작고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향년 91세. 천 화백의 맏딸 이혜선 씨(70)가 지난 여름 유골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을 방문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1924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고인은 일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1952년 뱀 그림 ‘생태’를 발표, 화제를 모았다. 전통 동양화 기법을 벗어나 문학적 설화적으로 여인의 한(恨)과 꿈, 고독을 환상적인 원색으로 펼치며 독특한 미술 세계를 구축했다.

1998년 작품 98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뒤 뉴욕으로 떠난 천 화백은 2003년 뇌출혈로 쓰러져 딸의 간호를 받았다. 작년 6월에는 이씨가 대한민국예술원에 어머니의 회원탈퇴서를 제출하면서 국내 예술계와 한바탕 감정 다툼을 벌인 바 있다.

○풍경화 ‘초원Ⅱ’ 12억원으로 최고가

천경자 화백 두 달 전 타계…그림값 치솟을까
‘꽃과 여인의 화가’로 불리는 천 화백이 작고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의 주요 작품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최근 발표한 ‘한국 근현대 인기 작가 가격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천 화백의 채색화 작품의 평균 호당 가격은 8250만원으로 2013년(1532만원)보다 크게 올랐다. 박수근 화백(1억7800만원)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1998년 미술품 경매가 처음 시작된 뒤 천 화백 작품은 569점(드로잉, 판화 포함)이 경매에 출품돼 402점이 낙찰됐다. 거래총액은 222억원, 점당 평균 낙찰가는 5500만원꼴이다. 올 들어 경매시장에 나온 74점 중 55점(낙찰총액 25억원)이 팔려 낙찰률 74%를 기록하고 있다.

천 화백의 작품 가운데 가장 비싸게 팔린 것은 2009년 K옥션 경매에서 12억원에 낙찰된 풍경화 ‘초원Ⅱ’다. 2007년에는 1962년작 ‘원(園)’이 11억5000만원에 낙찰됐고, 지난 7월에는 미국 수집가가 오래 소장한 1989년작 ‘막은 내리고’가 8억6000만원에 거래됐다. 1989년작 ‘여인’(8억원), 1982년작 ‘모자를 쓴 여인’(6억3000만원), ‘정글 속에서’(4억5000만원), ‘백일’(3억3500만원) 등도 억대 작품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해 사망설로 그림값 강세

천경자 화백 두 달 전 타계…그림값 치솟을까
지난해 사망설이 나돌자 경매시장뿐 아니라 화랑가에서도 천 화백의 그림값은 강세를 보였다. 채색화, 드로잉, 판화 등을 합쳐 1000여점으로 작품 수가 적은 데다 소장가들이 향후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시장에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꽃과 여인을 다룬 ‘미인도’의 경우 10호 크기가 3억~4억원을 호가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300만~400만원에 거래된 것에 비하면 30여년 만에 30배 정도로 오른 것이다. 풍경화는 2억~3억원, 드로잉은 점당 3000만원, 오프셋 판화는 200만~25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은 “천 화백 작품은 채색 재료가 석채냐 수묵담채냐에 따라 확연하게 가격 차이를 보인다”며 “석채로 그린 인물화는 수묵담채보다 2.2배 정도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천 화백 작품이 인기를 끄는 것은 현대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화풍 때문이라고 미술 전문가들은 풀이한다. 한(恨)과 고독이 짙게 배어 있는 그의 작품은 신비주의적 채색을 통해 삶의 희열을 엿볼 수 있어 컬렉터들이 많이 찾는다는 설명이다.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아프리카와 꽃을 소재로 한 채색화는 최근 화랑가에서 종적을 감춘 상태이고 풍경과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은 간간이 유통된다”며 “유통 작품이 적은 만큼 향후 큰 폭의 가격 오름세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