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주부가 육아 문제로 남편과 갈등을 빚다가 생후 50일 된 갓난아기를 살해한 끔찍한 일이 일었다. 숨진 아기는 그 부부가 결혼 13년 만에 겨우 얻은 아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자녀를 둔 부부들은 아이 키우는 문제로 종종 다투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저마다 나름대로 갈등을 극복해 나간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사건은 너무나도 비극적이었다.

영아 살인까지 가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지만 육아 문제가 발단이 돼 이혼 소송까지 가는 사례는 서울가정법원 가사사건에서 종종 발견된다. 자녀를 보호하고 양육해야 하는 책임은 당연히 부모에게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사회에서 부모들에게 육아라는 숙제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게 사실이다.

최근 독일의 한 연구팀이 첫 아이를 갖게 된 독일인 2016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첫 아이를 임신해서 출산하기 직전까지는 행복지수가 급상승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뒤에도 행복감이 유지된 부모는 전체의 30%에 그쳤다. 이런 연구 결과는 세계적으로 문제되고 있는 저출산 기조에도 시사하는 게 크다. 육아로 인한 갈등을 단순히 당사자들만의 문제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서울가정법원에선 늘어나는 육아 갈등의 해소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가족 간 심리 치유와 신뢰 회복을 위한 가족캠프, 부부 심리상담과 면접교섭 지원, 부모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들은 관계 회복과 소통 개선을 통한 재결합 또는 건강한 이혼, 원만한 자녀 양육 합의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부모들이 육아에 대해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육아를 무거운 의무나 부담으로만 여길 게 아니라, 자녀가 부모의 품에 있는 동안 함께 행복한 시간을 즐길 권리로 볼 수도 있다. 사회생활에 지친 부모들은 아이들이 성숙해가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밖에서 저절로 크는 아이’로 만들 것인가.아니면 아이들과 깨알같이 대화하고, 즐거운 놀이를 같이 하면서 직장생활의 노곤함을 달랠 기회를 얻을 것인가. 모든 부모가 이제 육아를 부모의 권리로 인식하고, 아이들과 살가운 스킨십을 조금 더 즐기는 게 어떨까.

여상훈 < 서울가정법원장 shyeo@scourt.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