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0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맨 끝줄 소년’에 출연하는 배우 전박찬(왼쪽)과 박윤희. 예술의전당 제공
다음달 10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연극 ‘맨 끝줄 소년’에 출연하는 배우 전박찬(왼쪽)과 박윤희. 예술의전당 제공
스페인 최고의 현대극작가로 꼽히는 후안 마요르가(50)의 희곡 ‘맨 끝줄 소년’은 위험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문학 교사 헤르만은 17세 소년 클라우디오의 작문에서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자신의 욕망을 제자를 통해 대신 실현하고자 한다. 문제는 작문의 내용. 같은 반 친구인 라파 가족을 몰래 관찰하는 데서 시작된 작문은 점차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클라우디오는 더 매력적인 결말을 위해 위험한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간다.

욕망과 도덕, 현실과 가상의 사이에서 진실의 의미를 묻는 이 작품이 다음달 10일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오른다.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공연이다. 2013년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인 더 하우스(In the House)’라는 영화로 국내에 먼저 소개됐다. 지난 4월 국립극단이 제작한 ‘더 파워’에서 좋은 연기를 펼친 중견 배우 박윤희(47)가 헤르만, 지난해 연극 ‘에쿠우스’에서 소년 앨런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전박찬(33)이 클라우디오로 출연한다. 최근 서울 서초동 한 카페에서 만난 두 배우는 “같은 무대에 서는 건 처음이지만, 서로의 공연은 놓치지 않고 챙겨보는 사이”라고 소개했다.

“김동현 코끼리만보 대표(연출)가 마요르가의 작품을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겁부터 났습니다. 그동안 봤던 마요르가 작품들은 어둡고 진지해서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거든요. 일단 작품을 읽어보고 얘기한다고 했는데, 단숨에 끝까지 읽히는 거예요.”(박윤희)

마요르가는 작품 곳곳에 철학적 요소를 녹여낸다. 그는 극작가이기 이전에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철학자다. 이번 작품에도 도덕, 가족, 욕망에 대한 작가의 시선이 드러난다. 헤르만은 정상적인 가족이란 없으며, 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비정상적이라고 말한다. 클라우디오의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 범죄 공모자가 되기도 한다. 박윤희는 “헤르만에게 어떤 상처가 있었기에 이렇게 가정을 불신하게 됐는지, 얼마나 작가가 되고 싶었기에 제자의 위험한 행동을 멈추게 하지 않는지 등 인물의 행동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설명했다.

코끼리만보 단원인 전박찬은 ‘피리 부는 사나이’ ‘천국으로 가는 길’에 이어 세 번째로 마요르가 작품에 출연한다. 국내에 번역된 그의 희곡은 모두 읽었을 정도로 마요르가의 팬이다. “마요르가는 연극으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에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유대인 학살에 대한 비난 여론을 피하기 위해 체코의 한 수용소에서 ‘행복한 수용소’를 가장한 선전용 영화를 찍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게 ‘천국으로 가는 길’이죠. 예리한 시선으로 시대를 풍자하는 그의 작품이 좋아요.”(전박찬)

전박찬은 “이 작품도 희곡이 출판되자마자 읽었는데 클라우디오 역이 너무나 욕심났다”고 했다. 박윤희는 그가 클라우디오 역을 꿰찬 데 대해 “에쿠우스에서 앨런 역을 연기하는 모습이 연출에게 믿음을 줬을 것”이라고 거들었다. 전박찬은 지난해 32세에 17세 소년 역을 맡아 “원작에서 튀어나온 앨런 같다”는 호평을 받았다. 또다시 맡은 소년 역에 부담을 느끼진 않을까.

“에쿠우스에선 ‘과하게 어려 보인다’는 말을 칭찬으로 들었어요. 그런데 이 작품에선 클라우디오가 어린아이로 느껴지는 순간 주제의식이 흐트러져요. 오히려 클라우디오가 스승인 헤르만을 조종하기도 하죠. 이 작품에서 ‘소년’을 보러 온 관객은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라파 가족의 삶을 끊임없이 관찰하던 클라우디오는 점차 그들의 삶에 개입하게 된다. 더 매력적인 소설의 결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작품이 결말로 치달을수록 참혹한 미궁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라고 입을 모았다. 무섭게 변해가는 클라우디오의 모습과 관련해 박윤희가 물었다. “클라우디오, 넌 선생으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나를 좋아했니?” 한참을 생각하던 전박찬이 답했다. “클라우디오는 외로운 인간입니다. 그런 그에게 ‘글쓰기’라는 끈을 제공한 사람이 헤르만이죠. 그를 좋아했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결말을 마주할 관객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