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간사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왼쪽)과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예산심의와 관련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여야 간사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왼쪽)과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예산심의와 관련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사가 곳곳에서 파행을 겪고 있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26일 활동에 들어갔지만 16개 상임위원회 중 소관 부처 예산안 예비심사를 끝내고 다음 단계인 예결위로 그 결과를 넘긴 곳은 국토교통위원회뿐이다.

여야 간 의견 대립으로 예산안 심사가 중단되거나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상임위가 속출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한국형 전투기(KF-X) 사업 책임 논란, 정부 특수활동비 등 여야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뇌관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 졸속·지연 심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6일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기획재정부 등 소관 부처 예산안을 심사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이 전원 불참해 회의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교과서·KF-X 등 공방…내년 나라살림 심사 파행 속출
야당 의원들은 한국장학재단의 학자금 대출 금리를 현행 연 2.7%에서 2.0%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기재부가 한국장학재단 학자금 대출은 교육부 소관 사항이라며 난색을 표하자 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기재위 예결소위에 이어 열릴 예정이던 전체회의도 자동으로 무산됐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이날 예산안을 의결할 예정이었지만 야당 의원들이 세월호특별법 개정안을 먼저 처리하자고 주장하면서 회의가 파행됐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예산안을 상정도 하지 못했다. 교문위는 지난 19일 예산안 상정을 위한 회의를 열었지만 여야 의원들이 역사 교과서 공방만 벌이다 회의가 끝났다.

외교통일위원회도 예산안 심사가 순조롭지 않다. 지난 8월 임명된 손광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의 과거 발언이 예산 심사 파행의 불씨가 됐다. 손 이사장은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NK 편집장 시절 야당 의원들을 ‘청맹과니(앞을 못 보는 사람)’라고 지칭해 반발을 샀다. 야당 의원들은 손 이사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예산 심사를 시작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그나마 예산안 심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임위에서는 의원들이 지역구 관련 예산을 슬그머니 집어넣는 구태가 반복됐다. 국토위는 지난 23일 예산안을 의결하면서 정부 원안보다 2조4524억원 늘렸다. 도로·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늘린 결과다. 국토위 소속 의원들이 지역구 관련 예산을 10억~30억원씩 늘려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예산을 반영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도 소관 부처 예산을 정부 원안보다 1조7000억원 증액했다.

예결위가 26일 국회에서 개최한 내년 예산안 공청회에서는 여야 간 정치 공방으로 예산 심의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김상헌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예산이 정치적 사안의 볼모가 되는 행태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며 “SOC 투자도 정치적으로 결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결위는 27일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 연설 이후 부처별 심사를 거쳐 다음달 30일 전체 예산안을 의결, 본회의에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승호/은정진 기자 usho@hankyung.com